김동리 단편소설/등신불 줄거리
등신불 줄거리
김동리 단편소설
나는 스물 세 살 때인 1943년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으로 끌려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탈출을 결심하고, 대정대학에 유학한 바 있는 불교학자인 진기수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생면 부지 적국의 옷을 입은 한국인인 '나'를 믿지 않자, 나는 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원면살생(願免殺生) 귀의불은(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에 도착하여 원혜대사를 배알한다. 이곳에서 나는 수업을 하는 도중, 금불각을 발견하고 불상 역시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등신불을 대했을 때 나는 전율과 충격을 받는다. 등신불은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결가부좌상이었다. 젊은 승려인 청운의 이야기와 만적선사 소신성불기를 읽고 나는 만적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만적은 법명이고 속세에서의 이름은 조기이다. 그는 금릉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에게 개가하여 그의 외아들 사신과 같이 산다. 기와 신은 같은 또래인데, 어머니가 신에게 돌아갈 재산을 탐내어 신의 밥에 독약을 감춘다. 우연히 그것을 엿본 기는 그 밥을 자기가 먹으려 한다. 어머니가 이를 보고 기겁을 한다.
며칠 뒤에 신이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기도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가출하여 중이 된다. 만적은 법림원의 취뢰스님의 상좌로 불법을 배우다가 열여덟에 취뢰스님이 열반하자 은공을 갚기 위해 불전에 소신공양할 결의를 보인다. 그러나 운봉선사가 만류한다. 운봉선사의 알선으로 혜각선사를 만난 만적은 스물 세 살 되던 해 겨울 금릉에 나갔다가 10년 만에 문둥병에 걸린 사신을 만난다.
만적은 '신'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 공양을 결심하고는 화식을 끊고 이듬해 봄까지 먹은 것은 하루에 깨 한 접시씩 뿐이다. 이듬해 봄 법사스님과 공양주 스님만을 모시고 취단식을 하고 한달 뒤 대공양을 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화해 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나, 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러한 신비가 일어나, 모인 사람들은 불은을 입어 모두 제몸의 병을 고친다. 병을 고친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이게 된다. 모인 새전으로 만적이 탄 몸에 금을 입히고 금불각에 모신다.
나는 금불각의 등신불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새긴 부처님(등신불)이 하나쯤 있어도 무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북소리와 목어 소리만 들려 온다.
[이해와 감상]
'등신불(等身佛)'이란 사람 키 만한 정도로 만든 불상을 이르는 말이다.이 작품은 앉은 채로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고 불상이 된 사연과 그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서 인체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금의 불상이 된 등신불을 통하여 자연과 초자연의 상관관계를 그려 낸 작품이다.
만적의 소신공양은 자기 구원과 타인 구제의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 형제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의식으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들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화자인 '나'는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만 있지 않고, 자신의 번뇌와 내면세계까지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나'는 단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불문에 귀의한 스스로를, 소신공양을 통해 인간적 고뇌와 비애를 성불의 경지로 승화시킨 만적과 비교함으로써 삶의 번뇌를 한층 더 사실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만적의 이야기는 '나'가 손가락을 깨물어 쓴 혈서의 행위와 연관됨으로써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데, '나'가 전쟁이라는 학살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살을 물어 뜯는 행위는 소극적이나마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희생이라는 점에서 만적의 소신공양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월적 신앙을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려오는 숙명적인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절대자를 갈망하게 되며, 등신불은 그런 점에서 불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특이한 부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원혜대사의 선문답과도 같은 질문의 의미 → '나'의 단지(斷指)의 행위와 '만적'의 소신(燒身)의 행위가 정신적인 면에서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그 공통점은 '삶의 치열성'이다. 삶의 짙은 고뇌와 비극을 온전히 맛본 다음에야 새로운 삶으로의 지양이 가능해진다는 비극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