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쌍둥이 불상 나이 미스테리
해인사 쌍둥이 불상 나이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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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 반야심경 근거로 판명
기존 ‘9세기 제작’ 주장 여전
결정적 근거·기록 없어 미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 목조불상인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경남 합천 해인사의 쌍둥이 비로자나불상이 늦어도 12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손영문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지난 4일 열린 한국미술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의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을 만든 절대 하한 연대가 고려의종 21년인 1167년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최고 목조불로 공인됐던 충남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좌상(1280년)보다 10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손 위원이 불상 연대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최근 두 불상 안에서 발견한 11~12세기 불경 등의 복장유물(불상 뱃속에 넣는 예물)들이다. 그는 두 불상에서 함께 나온 <반야바라밀다심경>(이하 반야심경) 말미에 적힌 옛 사씨 집안의 친필 발원문2쪽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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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쌍둥이 비로자나불상의 연대 문제는 최근 국내 미술사학계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논란은 2005년 경남 합천 해인사가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 법보전 비로자나불상이 국내 최고의 9세기 통일신라 목조불로 확인됐다고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불상을 다시 칠하기 위해 상 내부를 확인한 결과 883년 대각간(통일신라시대 최고위 관직)과 그의 비가 발원해 만들었다는 나무판 명문이 나온 것이다. 또한 이 불상은 경내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상과도 모양, 크기가 쌍동이처럼 닮아 세간에서는 두 불상을 만든 배경을 놓고 통일신라 말 진성여왕과 그의 삼촌이자 애인이었던 위홍의 연애담이 오르내렸다.
법보전 불상 안 명문에 기록된 불상을 만든 시점과 가까운 890년에 진성여왕이 해인사를 각간 벼슬을 하다 죽은 위홍의 추모 원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쌍동이 불상은 여왕과 위홍의 ‘로맨스’가 낳은 산물이었을까. 실제로 최근 해인사가 두 불상을 봉안한 대비로전 뒷벽에는 둘의 사랑 이야기를 묘사한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학계는 이런 통설에 다소 부정적이다. 법보전 불상 내부의 연대 명문은 1000여년 전 것으로 보기엔 재질이 너무 생생하고, 신라시대 복장유물도 없었다는 게 주된 근거다. 명문, 복장물은 후대에도 넣을 수 있고, 불상 양식도 고려·조선시대까지 내려 볼 수 있어 통일신라 불상이 아니라는 견해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나온 손 위원의 이번 발표로 두 불상의 연대 논란은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고문서학자 최연식 목포대 교수는 “두 불상의 복장유물 가운데 신라 것이나 고려 때 중수 기록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라며 “고려 복장 유물들만 연대가 확실한 이상, 두 불상 모두 고려 때 만들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인사 쪽은 두 불상의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 등 문화재위원들은 복장물과 내부 명문에 대한 실물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이미 새 칠을 하고 비로전에 봉안된 두 불상의 재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래저래 두 불상의 ‘연대 미스터리’는 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