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Road] 그 낯선 땅 (10) 난주- 병령사석굴 1
유가협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병령사 석굴로간다.
- 선착장 주변 -
1974년에 완성된 유가협댐은 높이가 148m, 발전 전기량이 122만㎾에 달한다. 중국 서북지구에 공업용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수는 길이 65㎞, 너비 4.5㎞, 면적 137㎢에 달한다.
이 댐을 후진타오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지만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유가협댐은 댐의 크기도 크고 방류량도 어마어마하지만 협곡을 막아서 만든 탓인지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댐에 있는 선착장에서 병령사까지는 50㎞, 보트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이다.
들소들...
양떼들...
댐건설로 생긴 인공호수와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을 즐기다 보면 산 위에 병령사의 한부분인 불예대(佛爺臺)가 보인다.
이곳이 고대에 대상들이 황하를 건넜던 지점이다.
병령(炳靈)은 티베트어로 '십만불'이라는 뜻인데, 천불동, 만불동 등과 같이 많다는 의미이다. 병령사 석굴은 5호 16국 시대인 420년 서진시대부터 시작해서 명대까지 조성되었으나 룡흥사(龍興寺)로 불리던 당나라 때 가장 활발하게 석굴이 지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도 토번과 서하의 침입에 대처하는 의미로 불심을 모으기 위해서 많은 참배자가 찾았다.
이에 따라 불상에 대한 공양이나 동굴의 수리가 계속 이어졌고 원나라 이후에는 라마불교가 유행해서 라마불교 양식의 석각이 조각되었다. 약 1500년간 183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석굴은 크게 주 석굴이 있는 하사, 계곡 상부가 되는 상사, 그리고 이 중간지역인 중사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멀리 하사(下寺) 산벽에 조각된 현암좌불(懸巖座佛)이 시야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석굴은 상하로 나뉘어져 산기슭을 따라 2km에 걸쳐 이어진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조각과 지금도 색채가 뚜렷하고 아름다운 보살, 비천 등의 벽화가 남아 있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멀리 하사 산벽에 조각된 현암좌불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떤 남자가 따라오며 사진을 찍지말란다...
몇장 찍다가 카메라 뺏는다고해 포기했다.
감실은..햇볕도 들어올수있는 노출된 곳이고
절벽에 노출된 불상도 사진을 못찍게함.
서진시대부터 약 1,500년간 183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여기부터는 반대편에서 줌인해서 촬영
높이 27m, 풍만한 현암좌불
병령사 석굴군의 대표격인 현암좌불은 당대에 조성되었으며 높이가 27m인데, 상반신은 천연의 석주를 이용하여 조성했고 하반신은 찰흙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바위자체가 입자가 작고 점착력이 좋은 사암으로 되어 있어 뚫거나 조각하기에 좋았다.
석불이 어찌나 큰지 강의 반대편에 서서야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보수중이라 포장을 덮어 놓아 어렴풋이 보인다.
거대한 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석굴들이 있다.
예술적으로는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169번과 172번 석굴은 사다리를 타고 석벽을 올라가야 하는데 입구가 막혀 있다.
주로 전문가들이 저 곳으로 올라가는데 가려면 한 사람당 300위엔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원래 대불 앞에는 다층누각이 있었지만 청대 말 화재로 소실되었다.
옛날 사냥꾼이 사냥을 하다가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절벽에서 오색의 빛이 발하는 것을 보고 대불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리 지나면 계곡 위쪽 상사로 간다.
우리는 하사를 지나 반대편으로 돌아 나왔다.
(와불 옛날 사진)
석굴의 아랫부분에 있던 와불상은 댐건설로 물이 차오르면서 보존의 어려움이 있자 따로 절을 지어 실내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이곳에 와불이 모셔져 있다.
(몰래...급하게 찍으니 흔들렸다.)
댐건설로 자리가 옮겨진 16호굴의 와불상
이전엔 대불앞으로 물이 차있었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