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경주남산

서남산 [삼릉숲,삼릉]

박근닷컴 2012. 6. 10. 23:41

 

 

 

 

 

 

 

 

 

 

 

 

 

 

 

 

 

 

 

 

 

 

 

 

 

신라 56명의 왕 중에서 박씨는 모두 10명으로, 그 중 세분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하는데 제8대 아달라이사금의 능은 서쪽 가장 아래 위치하며, 중앙에 제53대 신덕왕이, 동쪽에 제54대 경명왕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산의 서쪽지역인 일명 서 남산 쪽에는 시조 혁거세거서간과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금, 5대 파사이사금, 시조의 부인 알영이 묻혀 있다는 오릉과 이들 왕릉의 연장선상에 6대 지마왕릉, 7대 일성왕릉, 8대 아달라왕릉이 있으나, 그 중에서 8대 아달라이사금이 신라 하대의 왕인 53대 신덕왕과 54대 경명왕과 같은 구역인 이 삼릉에 함께 묻혀 있다는 점에서 피장자의 진위 여부가 신중히 재검토되어야 할 것다.

삼국유사 왕력에 의하면 신덕왕과 경명왕은 화장을 한 후 각각 장골 및 산골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왕릉이 없는데도 조선 영조 때인 1730년에 각각 왕릉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경주 망성리의 花溪 유의건이 남긴 '花溪集'에 '라능진안설(羅陵眞贋說)'이란 왕릉이 정해진 내력에 대한 비판의 글에 따르면, 조선 영조 6년 경술년(1730년)에 경주부윤으로 있던 김시형이 문중 첫 족보를 만드는 사업으로 족보에 조상의 능묘 위치를 기재하기 위해 박씨 문중과 타협하여 전승(傳承)을 잃어버린 왕릉을 찾는 작업을 하였는데, 당시 두 문중은 남산을 기준으로 하여 동 남산에 위치하고 있는 능들을 김씨 왕릉으로 하고, 서 남산 일대에 있는 능들을 박씨 왕릉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도 적당히 조종하여 붙여 진 것이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