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해서 4~5세기 `가야시대 배` 최초 출토
김해서 4~5세기 '가야시대 배' 최초 출토
김해 봉황동유적 출토 가야배
진영 여래리 배모양 토기 등 그동안 토기는 출토된 사례가 있었으나
가야시대의 선박이 일부라도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선체 일부뿐만 아니라 운항을 위한 노(櫓)와 닻으로 추정되는 돌도 각각 1점 출토되었다.
경남 김해서 4~5세기 가야시대 선박 몸체 일부와 노, 닻이 출토됐다. 삼국유사에 김수로왕비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왔다는 기록이 있어 관련성을 두고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해시는 국가사적 2호인 김해 봉황동유적 남단 끝부분 연립주택 공사장에서 나무로 된 선박부재(몸체 일부) 1점을 발굴했다고 25일 밝혔다.
진흙 뻘 속에서 발굴한 길이 3m, 폭 60cm 선박부재는 배의 한쪽 격벽으로 추정됐다. 발굴품을 기준으로 전체 배의 크기는 길이 30m, 폭 10m 이상에 15명~35명 승선이 가능한 당시로서는 대형선박으로 나타났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패총, 고상건물지, Y자형 목책시설, 토제방울 등도 발굴됐다. 선박부재가 출토된 지역은 당시 국제 무역항구다.
함께 발견된 노
발굴품은 신석기시대 비봉리유적 선박 이후 국내 2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으며, 가야의 우수한 선박제조 기술을 엿볼 수 있어 해상왕국 가야의 실체를 증명할 획기적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2000년 발굴된 봉황동유적 서편일대의 가야시대 대규모 창고유적과 더불어 이곳에 가야의 주요 항구유적이 있었음이 증명하고 있다
김해시는 선박부재 정밀실측과 보존처리를 거쳐 선박전체의 규모와 구조를 복원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봉황동 남서쪽 일대를 가야시대 대규모 항구유적으로 정비 복원도 추진한다.
또 구 봉황초등학교 운동장 등 주변에 선박부재와 항구 시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발굴을 검토 중이다.
삼국사기 가락국기에는 서기 42년 금관가야가 창건될 당시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 온 허황옥이 타고 온 배는 사공 15명에 총 승선객이 35명이라는 기록이 있어 발굴된 배와 유사한 크기의 배를 타고 온 셈이다.
김해시 조성도 문화재과장은 "가야시대 배 일부가 처음으로 확인된 귀중한 유물을 발굴했다"며 "이를 토대로 가야시대 선박을 복원하면 가장 중요한 유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시스/김상우 기자 2012.6.25>
김해봉황동 유적
김해봉황동 유적
청동기시대와 삼한,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지이다
패총은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함께 버려져 쌓여 있는 곳으로, ‘조개더미’라고도 하며 당시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장소이다.
봉황대 언덕 근처에 서로 시기가 다른 회현리 조개더미와 무덤유적이 있다. 회현리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토기, 뼈·뿔도구, 석기, 가락바퀴(방추차), 불탄쌀(탄화미), 중국 화폐인 화천, 동물뼈 들이 나왔다. 이와 함께 도끼, 손칼 등의 청기가 발견되었고 높은 온도에서 구운 토기는 적갈색이나 회청색을 띠며, 사슴뿔이나 뼈를 가공해 만든 칼자루가 많다.
불탄쌀은 고대의 쌀과 농경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천은 중국 신(新)나라의 왕망이 기원전 14년에 만든 화폐로 유적이 형성된 연대를 알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중국과의 왕래도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조의 발굴이 이루어진 곳이며 가야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