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대마도 이즈하라 하치만구신사(八幡宮神社)
하치만구신사로 간다. 거리는 깨끗하고 인적이 거의 없다.
시내 거리 곳곳에 조선통신사행렬도 문양들이 있다.
18번은행
도리이의 위에 보면 굵은 새끼줄에 흰 종이를 꽂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시메나와'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서낭당의 부적과 같은 것이다.
팔번궁신사(八幡宮神社)-하치만구신사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신사로 대마도의 대표격인 신사다. 신사에 궁(宮)자를 붙인 곳은 격이 높은 신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치만궁 -국가를 지키는 국가수호의 신이라 하여 지금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고
연중 다양한 제사가 지내지고 있는 곳이다
삼한에 임나일본부를 건설했다는 가상의 인물인 진구황후를 받들고 있어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의 증거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마도에는 곳곳에 진구황후와 관련된 유적이 있고 진구황후를 모시는 신사가 있다.
하치만구신사에는 진구황후와 임진왜란의 선발대장이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 마리아 등을 모시는 곳이 있다.
맨 앞쪽의 도리이를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에서 신사앞으로 돌층계가 있으며 바로 신사로 연결된다.
이즈하라 하치만신을 모신 하치만구신사, 우노도신사, 천신 신사, 와카미야 신사가 함께 있다
하치만구신사는 일본의 덴진, 이나리신사와 더불어 일본 3대 개파의 신사로 일본 본토에서도 하치만구를 흔히 볼 수 있다
일본 전체에 하치만구신사가 3,000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즈하라의 팔번궁 신사는 서기 906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이 신사에는 대마도주 종가로부터
헌상된 귀중품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보물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는 대마도 19대 도주의 부인과 아들을 모신 마리아 신사가 같이 있다.
신사 앞에 있는 고마이누
고마이누는 고려 개라는 뜻이란다.왼쪽의 개상은 입을 다물고 있고
오른쪽의 개상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신사 앞에는 사자와 같이 생긴 두 마리의 짐승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사자가 아니고 고려개(高麗犬-고마이누)이다.
고마이누란 말은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마’와 개를 지칭하는 ‘이누’라는 일본어의 합성어다.
즉 고구려에서 건너온 개라는 말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개가 숫컷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개가 암컷이다.
고마이누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뿔이 달린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으며, 귀가 선 것도 있고 서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귀가 서지 않은 것은 흡사 사자와 비슷한 모양인데, 이것을 보고 삽살개에서 그 원형을 따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보다는 고마이누를 더욱 강력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다른 수호영물인 사자나 해태의 이미지를 합해서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귀가 선 고마이누라 해서 진돗개 또는 귀가 선 한국 개를 형상화한 것은 아니다. 고마이누는 어떤 견종의 상이라기보다는 신구문화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고마이누는 신사뿐 아니라 도다이사東大寺를 비롯해서, 나라와 교토의 주요 사찰 입구에는 거의 빠짐없이 거대한 석상으로 서 있다
신사를 참배하기전에 손과 입을 씻는 곳
궁금해서 찍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글돋선생"이라는 분이 이런글이 있다
-<세종때 이종무가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고 조선에서 대마도주에게 "태수"란 관직을 내린다 팔번궁 "도리이"뒷편에
새겨진 "태수" 관직명 관련있는게 아닌가라는.. >
이 팔번궁신사는 최익현선생이 대마도로 유형이 되어 처음으로 감옥살이를 한 곳이다
최익현선생은 1906년 6월 11일 의병투쟁 중 전남 순창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8월 4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조선군주차사령부(朝鮮軍駐箚司令部) 헌병대 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대마도로 압송되어 이 팔번궁신사 경내 남측, 사족수산소(士族受産所) 자리에 있던 임시 수용소에서 유형이 시작되었다.
최익현선생이 이곳에 끌려 왔을 때 이미 붙들려 와 있는 한국인 의병 9명이 있었다.
이들은 쯔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지어질 때까지 3개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단층짜리 임시가옥은 헌병대 관리하에 있었으며 선생은 감옥 안에서 매일 서쪽을 향해 재배(再拜)를 했다고 한다. 그쪽은 고종황제가 있는 곳이었다. 신하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3개월 후 최익현선생과 일행은 대마분견대(현재 육상자위대) 내에 새로 지어진 수용소로 옮겨갔다
보수공사시 기부자 금액과 이름이 적힌 비석들
신사 앞에 있는 말의 신(馬神)- 아픈부위가 있으면 말의 몸에 그 부위를 만지면 좋아진다고한다.
석등과 청동등
기원지들....
안쪽에 하얀건물이 보물전이다..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빨강색차 뒤에 보이는곳은 마리아 신사
마리아 신사는 19대 대마 도주의 부인과 아들을 모신 곳이다.
마리아의 아버지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임진왜란 때의 선봉장으로 조선에 출병하여 평양까지 침공하였으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권력 싸움(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하여 참수형을 당한다. 이에 고니시의 사위 종의지(쇼 요시토시)는 대마 주민의 안전을 위해 부인인 마리아와 이혼하고 나가사키로 내친다. 마리아는 거기서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권력 싸움에 희생된 그녀를 위해 <이마미야>, 그녀의 아들을 위해 <와카미야>로 이 신사에 각각 입산시킨 후 제사를 모시다가 후에 천신신사에 합사되었다고 한다.
- 신사는 에전부터 어른들이 성황당에서 소원을 빌듯 일본인은 특별한 날이나 일이 있으면 항상 들러서
기원을 드리는 생활이며 믿음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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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를 알고자 여행가이드 이야기와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를 하였다.
대마도 1박2일 일정의 이야기속에 역사 이야기는 인터넷블러그 솔뫼님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2012.07.05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