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유적답사

경주문화원 (옛,경주박물관)

박근닷컴 2014. 5. 21. 00:36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이다.)

 

 

경주경찰서 뒤편에 가면 구 경주박물관 터가 있다. 조선시대는 경주부의 관아 및 부속 행정관서가 자리하여 지금의 영남일대를 호령하던 권부의 중심지요,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신라유물을 보관, 전시하던 자리이다.

1913년 경주고적보존회가 발족되고, 2년 뒤 신라유물전시관이 생기면서 주변에 흩어져있던 각종유물들이 수집 전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26년에  조선 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정식 개관되었고,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순수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독립하게 됐다.

그 후 1975년7월, 지금의 경주박물관이 인왕동에 새로 건립돼 이전되기까지 약 60년간, 신라유물의 유일한 종합보관 전시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1986년 부터 경주문화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지금 이곳에는 당시 유물 전시관, 종각 등으로 쓰이던 옛 기와 건물들이 서너 채 남아있고, 넓은 빈터에 군데군데 건물의 부재인 기와, 주춧돌, 장대석 등이 줄지어 박혀있다.

 

 

 

 

동편 건물 (현 향토문화연구소)
조선시대 영선소, 수비대, 또는 객관으로도 쓰였다고 전하며, 후에는 구 경주박물관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북쪽에는 박물관장 및 직원사무실로, 남쪽에는 귀빈실과 접견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좌우에 각 1칸씩을 더 늘린 정면 5칸의 팔작 기와지붕 건물처럼 보이는데, 지붕 구조모양이  특이하다. 또 남측과 북측 벽의 칸수와 그 크기가 서로 다름이 이색적이다.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건물

 

성덕대왕신종이 1915년 봉황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지면서 종과 함께 온 건물이다.

현,인왕동 새 박물관으로 종이 이전(1975년)되기까지 60년간

그리고 그 후 빈집으로 40여 년간, 거의 1세기동안 한 자리에 서있는 건물이다.

 

 

 

 옛, 성덕대왕신종 종각건물

 

 

 

약500년 은행나무[경상북도 기념물제66호]

 

 

경주문화원강당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앞에서.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뒷편에서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뒷편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측면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앞 퇴마루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앞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 옛 관아 내아. 앞 퇴칸 주춧돌

 

 

옛, 박물관터에 향토사료관 개관운영

경주문화원(원장 김기조)에서는 이러한 역사적배경과 조상의 문화정신이 숨 쉬는 옛 박물관 터에 ‘향토사료관’을 개관, 운영하고 있다. 주로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경주와 관련된 유물, 기록 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중요 전시물은 (1) 경주읍성모형과 성곽구조설명 (2) 경주읍내전도와 주요 건물 위치 (3) 우리나라 최초의 화약, 무기류 관련자료 (4) 조선시대 총통과 비격진천뢰 (5) 경주지역의 임진왜란 항쟁사 (6) 경주부윤의 갑옷과 관복 및 관리들의 복식 (7) 집경전 구기도첩관련자료 (8) 경주의 옛 풍물 사진류 (9) 기타 경주시의 변천사 관련 자료 등이며,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월요일 및 국경일은 휴관) 10시부터 17시까지며, 문화 해설사가 상주 설명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경주 문화원 안.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는건물 (옛, 관아 내아) 향토사료관 해설자

 

 

 

 

 

 

 

서편 건물
조선시대 경주읍성 북문 근처에 있던 양무당(무관들이 집무하던 곳) 건물로, 1915년경에 이곳에 옮겨와 ‘집고관’이란 이름으로, 신라유물중 주로 석조물이 보관·전시되었다. 정면6칸 측면 4칸의 팔작기와지붕으로, 건물 모양이 ㄷ자형으로 생겼다.

 

 

서편 건물
조선시대 경주읍성 북문 근처에 있던 양무당(무관들이 집무하던 곳) 건물로, 1915년경에 이곳에 옮겨와 ‘집고관’이란 이름으로

신라유물중 주로 석조물이 보관·전시되었다.

 

건물 모양이 ㄷ자형으로 생겼다.뒷편으로 가면 확인이 된다.

 

 

 

건물 모양이 ㄷ자형으로 생겼다.뒷편으로 가면 확인이 된다.

 

 

건물 모양이 ㄷ자형으로 생겼다.뒷편으로 가면 확인이 된다.

 

 

아래 왼쪽이 양무당(옮겨와 집고관 정면6칸 측면 4칸의 팔작기와지붕으로, 건물 모양이 ㄷ자형건물)  

오른쪽 밑에 건물이 종각건물.  박물관본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왼쪽

나무 아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사진출처.경주신문)

 

 

 

 

 

 

 

 

 

 

 

 

 

건물과건물사이 중앙건물이 옛,금관고(사진출처.경주신문)

 

 

일제 강점기때 경주시민의 성금으로 지은 전시관(금관고)터.

경주문화원에 들어서 향토사료관 좌측을 돌면, 목조사각정자 하나가 뎅그렇게 서있다. 그 바닥 크기는 좌우 각 10여 미터 정도이며, 정자 안에 긴 목제 사각 기둥의자들이 옆으로 길게 놓여져, 오는 이 가는 이가 쉬어가는 자리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가 신라금제류 유물을 보관 전시하던 ‘금관고(金冠庫)’ 자리이다.

 

 

수령 300년 정도의 산수유나무... 밑둥치가 썩어 고사상태이나, 위에는 잎이 무성하여 꽃을 피운다.

모양이 용을 닮았다하여 비룡목이라고도 부른다.

 

 

 

수령 300년 정도의 산수유나무

 

 

 

수령 300년 정도의 산수유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