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경주 무첨당(사당) 설계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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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이미지들은 무첨당 별채입니다. 도면은 무첨당 사당입니다.
무첨당 별채는 도면을 구하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아래는 무첨당 별채가 아닌 사당의 도면들입니다.
- 지정번호 : 보물 제411호
-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81번지
- 소 유 자 : 이인식
- 지 정 일 : 1964년 11월 14일
- 규모양식 : 정면 5칸반, 측면 4칸, ㄱ자형 평면, 정면 팔작지붕, 측면 맞배+가적지붕
- 시 대 : 조선시대 중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부친인 이번(李蕃)이 살았다고 하는 여강이씨의 종가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의 무첨당이란 당호(堂號)는 이언적 선생의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의 호(號)를 딴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무첨당은 종가 좌측에 있는 별당을 지칭하는데,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이자 경세가(經世家)인 문원공(文元公) 이언적을 봉사(奉祀)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일명 봉사청(奉祀廳)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이 집은 양동마을 북촌 가운데 산등성이의 서북방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 난 사주문(四柱門)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무첨당이 남향하여 앉아 있으며, 마당의 동쪽에는 구자형(口字形)의 정침(正寢)이, 정침 뒤쪽 언덕위에는 사당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무첨당은 정면 5칸 반, 측면 4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통간(通間) 온돌방을 들인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몸채를 구성한 후, 좌측 온돌방 전면에 2칸의 누마루를 돌출시켜 전체적으로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누마루의 동쪽과 남쪽에는 툇마루를 두르고 계자각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우측의 온돌방 옆에는 앞뒤로 작은 온돌방과 마루를 들인 제청(祭廳)을 마련하였다.
대청의 전면은 마당을 향해 개방되어 있으며, 누마루는 대청을 향한 마당쪽만 개방되어 있다. 누마루의 남측면에는 각 칸마다 2짝 들어열개 골판문을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개방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서측면에는 각 칸마다 2짝 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대청의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하기 전에 이 집을 방문하여 썼다는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좌해금서란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막돌허튼층쌓기한 높은 기단위에 주좌(柱座)만 둥글게 다듬은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초익공(初翼工)으로 장식하였으며, 도리는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으로 구성하였는데, 가구는 삼분변작법(三分變作法)을 채택한 까닭에 중대공은 키가 낮게 되었으며 종량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종도리와 장혀를 받게 하였다.
지붕은 누마루쪽은 팔작지붕이나 몸채의 우측은 맞배지붕인데, 우측간의 제청위 부분에는 맞배지붕에 붙여 가적지붕을 설치하였다.
자료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