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옛것과 새것 경계가 없네 … 리움 10년의 교감
백자부터 데이미언 허스트까지
동서양, 종교와 예술 넘나들어
"미술로 대중과 소통" 메시지
3개관 모두 열어 230여 점 전시
국보 제309호 백자호(달항아리) 옆에 이수경의 ‘달의 이면’이 놓였다. 깨진 도자기로 새로운 예술품을 만들어 온 이 현대 미술가는 이번엔 함경도 회령서 만들어진 흑자(黑磁)와 옹기 파편을 모아 이어 달항아리의 그림자가 아닐까 싶은 검은 도자 조형물을 내놓았다. 남북 분단으로 잊혀진 자기, 흑자의 복원이다. 불상과 불화·불경이 놓인 전시실엔 마크 로스코의 검은 추상화, 자코메티의 좌상이 함께 놓여 예술의 종교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10주년을 맞는 서울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의 화두는 ‘교감(交感)’. 시대교감·동서교감·관객교감이다. 리움은 2004년 개관 당시 마리오 보타의 ‘뮤지엄1’(고미술 상설 전시실), 장 누벨의 ‘뮤지엄2’(현대 미술 상설 전시실), 렘 콜하스의 ‘블랙 박스’(기획 전시실) 등 세계적 건축가 3인의 설계로 화제를 모았다. 오는 10월 10주년을 맞이하며 세 건물을 활용한 전관 기획전을 내놓았다. 한국 고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미술관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기획전에서도 살렸다. 19일부터 12월 21일까지 열리는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Beyond and Between)’이다. 국보급 고미술부터 올라퍼 엘리아슨·데이미언 허스트·고헤이 나와·장샤오강 등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의 작품까지 230여 점이 출품됐다. 에르네스트 네토·리암 길릭·아이웨이웨이·이세경 등은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오감 자극형 작품을 내놓았다.
전시의 시작은 한국 고미술 상설 전시실인 ‘뮤지엄1’이다. 김수자의 영상 ‘대지의 공기’는 도자의 근원을 다뤘고, 청자양각운룡문매병(보물 제1385호)은 바이런김의 비색 2면화와 만난다. 길이 20m 원형홀(로툰다) 한가운데엔 최정화의 플라스틱 기둥 ‘연금술’이 설치됐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플라스틱 용기를 쌓아 만든 예술품이다. 고서화실의 ‘우리나라’(서도호)는 손톱만한 청동 군상이 다닥다닥 모여 한반도 지도를 이룬 작품이다. 고서화의 주제가 풍경과 인물, 즉 땅과 사람임에 착안했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예술을 만들어 온 것은 사람, 특히 한 명의 왕이 아니라 우리 모두임을 웅변한다. 고미술실과 현대미술 전시실을 잇는 통로엔 올라퍼 엘리아슨의 태양계 조형물 ‘중력의 계단’이 설치돼 이들 미술품들이 거쳐온 시간을 생각하게 했다.
현대미술 상설 전시실인 ‘뮤지엄2’ 또한 지역과 시대 경계를 허물었다. ‘표현’‘근원으로의 회귀’‘확장과 혼성,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별로 앵포르멜, 미니멀리즘과 한국의 단색화, 동시대 미술을 전시했다. 세계 미술의 맥락 속에 한국 현대미술을 자리잡게 했다. 기획 전시실 한가운데는 나무 가설무대(리크릿 티라바닛)를 설치해 전시 기간 내내 공연·패션쇼 등 퍼포먼스를 열어 관객과의 교감을 꾀한다. 리움이 위치한 이태원의 과거를 보여주는 인터뷰 영상과 책자 ‘잇!태원: 감각의 지도’(인사이트씨잉)로 지역 사회와의 교감도 추구한다.
전시를 기획한 우혜수 학예연구실장은 “지금 우리 사회·문화의 중심 화두를 ‘교감’으로 봤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미술관과 미술품도 더욱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는 우리의 비전을 전시를 통해 보여드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시 도록에 “세계 미술관의 추세는 경계 허물기”라며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함께 전시되거나, IT 기기를 활용해 작품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추세”라고 썼다.
‘교감’전이 담은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 문화재는 과거의 죽은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살아 움직이는 예술품이라는 것, 한국 현대미술은 세계 미술의 맥락과 교감하면서 독자적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미술관은 관객, 즉 사람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1만원, 청소년 6000원.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관람료 50% 할인. 02-2014-6901.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