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소련붕괴 20년, 거인은 어떻게 무너졌나..`유라시아 연합(EAU) 2015년께 출범`
<소련붕괴 20년> ①거인은 어떻게 무너졌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AP=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1917년 볼셰비키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등장한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은 냉전시대 공산권의 맹주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 강자로 군림해왔다.
이런 `거인' 소련은 70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와해됐다.
1991년 12월 8일. 20년 전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종말을 향해 첫 발짝을 뗀 날이다.
옛 소련의 핵심국가인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3국 정상은 벨라루스의 '벨로베슈스카야 숲'에 있는 별장에 모여 소련을 해체하고 느슨한 형태의 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서명 18일 만인 같은 달 26일 소련의 의회라 할 최고회의는 소련의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소련은 공식적으로 이날 사망했다.
소련은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내전에서 승리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들이 러시아와 캅카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합쳐 1922년 탄생했다. 하지만, 70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 붕괴의 서막 = 소련 붕괴의 원인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다양하다. 그러나 40여 년간 미국에 냉전으로 맞선 거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조짐은 1988년 처음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1985년 권좌에 올랐던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집권 직후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기치로 변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변혁은 조금 늦었다. 군사력 경쟁을 통한 냉전으로 소련 체제를 지탱하기에 경제가 파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9년간 벌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기하고 1988년 철군 결정을 내렸다.
글라스노스트로 정치범 석방과 언론 자유 등이 이뤄지자 중앙 정부 권력은 급속히 약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보조하기 위한 정부 재정지출이 급증하면서 1989∼90년 정부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처했다. 생필품을 배급받으려 선 줄은 수km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 국제 원유가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원유 수출로 지탱하던 소련의 재정을 파국으로 몰아갔다는 분석도 있다.
냉전과 정치적 억압으로 간신히 지탱하던 공산당 체제는 계획 경제의 실패와 군비 경쟁 탓에 쌓인 '피로 균열'을 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동유럽 민주화…연방국 탈퇴 = 소련의 개혁과 개방의 영향을 받아 1989년 동유럽 여러 나라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고 공산당 정권은 잇따라 무너졌다.
동유럽 민주화로 소련내 개별 공화국은 제각각 주권을 선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 공화국은 연방 탈퇴를 허용한 소련 헌법 72조를 근거로 독립을 거론했다.
고르바초프는 더 앞서 나갔다. 1990년 4월 각 공화국 주민이 국민투표에서 3분의 2가 찬성하면 연방에서 탈퇴할 수 있게 한 법안을 통과시켜 연방 해체의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러시아 공화국도 이듬해 3월17일 연방 탈퇴를 두고 국민투표를 했으나 안건은 부결됐다. 투표 부결은 '연방강화' 여론을 일으켜 총 15개 연방공화국 가운데 러시아를 포함해 9개 공화국이 느슨한 형태의 새로운 연방을 구성하는 '신연방조약'을 이끌어냈다.
◇쿠데타 실패가 결정타 =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과 국방장관 등 공산당 보수 강경파는 1991년 8월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되돌리려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의 목적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펴온 고르바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보수파의 세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개혁 세력이 추진하던 신연방조약 체결을 막는 데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 시민은 쿠테타 세력이 배치한 장갑차에 맨손으로 맞서며 격렬히 저항했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의회 의사당 건물을 봉쇄한 진압군의 탱크 위로 올라가 개혁에 맞서려는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며 전 국민적 저항을 촉구했다. 결국 보수파의 쿠데타는 3일만에 실패로 끝났다.
쿠데타가 성공했다 해도 소련의 해체는 막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소련의 경제 파탄과 일부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 속에서 막 등장한 민주세력은 역량이 모자라 소련 해체를 막을 힘이 없었다는 얘기다.
쿠데타 사건 뒤 고르바초프의 힘은 급속도로 약화했다. 그해 9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3국이 소련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갔다.
석 달 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레오니트 크라프축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 벨라루스 최고회의 의장 등 3국 정상은 벨라루스 서부 벨라베슈스카야 숲에 있는 소련 지도부 별장에서 소련의 종말을 고하고 '독립국가 연합'(CIS) 창설에 서명했다.
이어 12월 21일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를 뺀 14개국 대표들이 CIS 창설을 알리는 알마티 의정서에 서명했다. 고르바초프는 25일 소련대통령 직을 사임했고 권력을 보수파 쿠데타 저지의 주역인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넘겼다.
소련 최고회의는 26일 마지막 회의에서 소련 해체를 공식 선언했고 붉은색 바탕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국기가 크렘린궁에서 내려졌다.
소련의 붕괴, 아니 해체 결정 이후 러시아는 소련의 합법적 승계국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 군과 치안기구도 물려받았다. 물론 소련의 외채도 떠안았고, 대외 자산도 모두 승계했다.
<소련붕괴 20년> ②경제통합체로 되살아나는 소련
푸틴 총리 주도로 '경제판 소련' 부활 움직임 본격화
"옛 소련권 경제공동체 '유라시아 연합' 2015년께 창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1991년 12월 8일,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 서부 비스쿨리 지역의 벨라베슈스카야 숲에 있는 소련 지도부 별장.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과 레오니트 크라프축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 벨라루스 최고회의(의회) 의장 등 3국 정상이 소련에 종말을 고하는 역사적 문서에 서명했다. 후에 '벨라베슈스카야 협정'이라 불리게 된 이 문서에서 정상들은 소련을 해체하고 보다 느슨한 형태의 국가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키로 합의했다. 70여년을 존속한 소련제국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1년 11월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유라시아 경제통합에 관한 선언서'에 서명했다. 옛 소련에 속했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3국을 중심으로 경제통합을 이루고, 이후 다른 소련 국가들을 끌어들여 유럽연합(EU)과 유사한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였다.
'유라시아 연합(Eurasian Union: EAU)'이란 이름의 이 경제공동체는 소속 국가 간 상품과 노동,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뿐 아니라 단일 경제정책 및 통화정책 실현, 단일 통화 도입까지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이 붕괴한 지 정확히 20년 만에 사실상 경제관계를 축으로 하는 옛 소련 부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3국 정상은 경제 통합 선언서와 함께 통합 과정을 주도하고 새로 탄생하는 경제공동체를 운영할 초국가조직인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창설에 관한 협정에도 서명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각국이 행사하던 175개의 권한과 기능이 위원회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라시아경제위원회가 장기적으로 EU 집행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것이란 의미였다.
◇ '경제판 소련' 부활 본격화 = 경제공동체 창설을 통한 옛 소련 부활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간헐적으로 논의돼온 이같은 구상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였다.
푸틴 총리는 지난 10월 초 현지 유력 일간 '이즈베스티야' 기고문을 통해 내년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3국 모임으로 출발하는 '단일경제공동체(Common Economic Space: CES)'에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들을 끌어들이면서 EAU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옛 소련권 3국은 내년 1월1일부터 관세 장벽을 없애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CES를 본격 출범시킨다.
푸틴은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통합체인 유라시아 연합 창설이란 야심한 목표를 설정하려 한다"면서 EAU는 회원국 간의 경제ㆍ통화 정책을 보다 긴밀히 조율하고 완전한 의미의 경제연합을 형성하는 초국가조직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라시아 연합은 열려있는 프로젝트이며 CIS 국가들을 포함한 다른 파트너들이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그러면서 EAU가 옛 소련 부활 시도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미 과거가 된 어떤 것을 복원하거나 베끼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EAU는 절대 소련의 부활이 아님을 애써 강조했다.
푸틴의 제안에 이어 옛 소련 주요 국가인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3국이 경제 통합을 선언하면서 EAU 구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내년 대선에 승리한 뒤 대통령으로 크렘린에 복귀하면 자신이 제안한 EAU 구상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총리 공보실장도 푸틴이 EAU 구상을 밝힌 이튿날 "푸틴은 유럽 연합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 6년 동안 그의 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푸틴이 6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는 2018년 EAU 수장 자리로 옮겨 앉아 옛 소련 공산당 서기 지위를 누리려 할 것이란 성급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 "유라시아 연합 2015년께 출범" = 전문가들은 대략 2015년 무렵 EAU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회와 학계 등에서 EAU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겐나디 추프린 박사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2015년쯤이면 유라시아 연합 창설이 가능할 것"이라며 "조금 늦어지더라도 2017~18년 무렵에는 EAU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프린 박사는 "1991년 정치적 존재로서의 소련은 무너졌지만 이후에도 옛 소련 국가들 간의 경제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얼어붙고 단절되거나 부분적으로 파손됐을 뿐"이라며 "공통의 문화와 문명, 역사, 언어 등을 가진 옛 소련 국가들 사이의 경제 관계 복원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AU 구상에 대한 옛 소련 국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옛 소련 15개 공화국 가운데 이미 서방권으로 편입된 발트3국(에스토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제외하고 EAU에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인 나라는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와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3개국뿐이다.
러시아 주도의 CES에 참여하고 있는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는 당연히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키르기스스탄도 적극적이다.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 강화와 유럽경제권으로의 통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신중하긴 하지만 여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친(親) 서방 노선을 걸으며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조지아는 EAU를 소련 부활 시도라고 비판하며 참여할 뜻이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미하일 사카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푸틴이 EAU를 제안한 이틀 뒤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가장 야만적인 구상이며 소련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라고 혹평했다. 사캬슈빌리는 그러면서 "크렘린이 주도하는 어떤 형태의 국가 간 연합 시도도 '어두운 과거'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조지아는 그러한 연합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천명했다.
우즈베키스탄도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부가 강력한 국가통제적 경제시스템과 폐쇄적 대외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옛 소련 국가들과의 경제 통합이 현 정치경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소련붕괴 20년> ③"소련, 소멸된 건 아니다"(끝)
추프린 IMEMO 지도위원 "단절됐던 경제관계 빠르게 회복될 것"
"푸틴 제안 '유라시아 연합' 2015년, 늦어도 2018년께 출범 예상"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소련이 붕괴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지도위원 겐나디 추프린 박사는 최근 러시아를 중심으로 옛 소련 국가들의 경제통합 움직임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것과 관련, "1991년 정치적 존재로서의 소련은 무너졌지만 이후 옛 소련 국가들 사이의 경제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며 "공통의 문화와 문명ㆍ역사ㆍ언어 등을 가진 옛 소련 국가들 사이의 경제 관계 복원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프린 박사는 2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제안 이후 본격 논의되고 있는 옛 소련 국가들의 경제통합체인 '유라시아 연합(Eurasian Union: EAU)' 창설 구상과 관련 "실현 전망을 긍정적으로 본다"며 "이르면 2015년께, 좀 늦어지더라도 2017~18년 무렵에는 EAU가 출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회와 학계 등의 EAU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추프린 박사는 '일부에서 EAU를 옛 소련 부활 움직임으로 본다'는 지적에 대해 "EAU는 순수하게 경제통합체가 될 것이며 정치 통합체인 소련식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추프린 박사와의 일문일답.
-- 소련 해체 20년이 지난 지금 EAU와 같은 국가 간 경제통합 제안이 나오는 이유는.
▲ 사실 EAU 구상은 푸틴 총리가 처음 제안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에서 연설하면서 처음으로 EAU 창설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로 반응이 없어 잊혀졌다.
이번에 푸틴 총리가 다시 EAU 구상을 제안한 데는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에서 득표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일정 정도 숨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소련 붕괴 이후 각 공화국이 자립적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환상임이 드러났다. 사실상 대부분의 소련 소속국들이 독립 이후 경제 상황이 더 나빠졌다. 소련 시절처럼 소속 공화국 간의 생산과학기술 분야 공조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각국의 산업생산력을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경제 통합에 대한 필요를 키우고 있다.
-- 다른 나라는 몰라도 러시아는 자립할 수 있지 않나.
▲ 러시아도 겉으로는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원의존형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유ㆍ가스 부문이 러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이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도 옛 소련 공화국들, 특히 항공ㆍ우주 분야가 발달한 우크라이나 등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을 이룰 수 없다.
러시아는 최근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과 관세동맹 및 '단일경제공동체(Common Economic Space: CES)'등을 구성해 예전의 공조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교역량은 약 40%나 늘었으며 올해 양국의 교역액은 2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3국 간 교역액은 1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아주 빠른 회복세다.
-- EAU 구상에 대한 옛 소련 국가들의 반응은 어떤가.
▲ 러시아와 CES에 참여하고 있는 카자흐, 벨라루스는 당연히 적극적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권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키르기스스탄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옛 소련 15개 공화국 가운데 서방권으로 들어간 발트3국을 제외하고 EAU 구상에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인 나라는 그루지야(조지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3국뿐이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親) 서방 노선을 걸으며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는 그루지야는 당분간 EAU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루지야 정부도 공식적으로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부가 강력한 국가통제적 경제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도 옛 소련 국가들과의 경제 통합이 현 정치경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소극적이다. 아제르바이잔도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론 EU의 자유교역구역에 들어가길 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옛 소련 국가 통합 움직임에 참여하겠다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
-- EAU가 대략 언제쯤 출범할 것으로 보나.
▲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돼가면 2015년쯤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늦어지더라도 최소 2017~18년까지는 출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실현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옛 소련 국가들의 경제통합은 유럽연합(EU)과는 차이가 있다. EU 회원국들은 협력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옛 소련 국가들은 예전에 존재했던 관계를 회복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더 쉽고 시간도 적게 든다.
1991년 소련 공화국들이 정치적 주권을 회복하며 독립하긴 했지만, 이들 국가 간의 경제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한동안 관계가 동결되고 단절되거나 부분적으로 파괴되긴 했지만 기반은 남아있다. 수십 년 동안 존재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순 없다.
게다가 옛 소련 국가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문화와 문명, 역사, 언어 등은 경제관계 회복을 앞당길 것이다.
-- EAU가 옛 소련 부활 시도라는 지적에 대해선.
▲ EAU는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경제적 통합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EAU를 두고 소련이나 러시아 제국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다시 정치적 주권을 양보해야 하는 소련 부활 시도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과정은 아주 긴밀한 경제통합 과정이며 여기엔 옛 소련 소속국 뿐 아니라 소련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몽골 같은 나라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 EAU 창설 움직임에 서방은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나.
▲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정말 소련 부활을 시도하는 것은 아닌지, 서방에 대립하는 조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많은 질문을 할 것이다. 러시아로선 EAU가 정치적 위험을 제기하지 않는 순수하게 경제공동체라는 점을 서방에 잘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경제공동체로서 EAU가 다른 경제 블록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 대립이 아닌 경제적 경쟁으로 정상적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EAU도 스스로의 효율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부자 러시아와 가난한 이웃들… 푸틴 '소비에트 연방 2.0(유라시아연합·옛연방 재결합)' 추진
조선일보 모스크바=권경복 기자
[소련 해체 20년] [4] 15개국으로 쪼개진 뒤 4개 블록 형성
러시아·벨라루스 - 같은 슬라브족… 재통합 모색
우크라이나·그루지야- 거대 러시아에 불안 느껴 EU·NATO 가입하려다 불발
발트 3국 - 옛 소련에 강제 합병된 아픔, 2004년 EU 회원국으로
중앙아시아 이슬람국들-장기독재와 빈곤 늪에 러시아 경제 의존도 심해져
"우리나라는 20년 전 소련(소비에트연방)시절만 해도 15개 국가로 구성된 대국(大國)이었다.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모스크바 동부 코신스카야 거리에 있는 '402번 중고등학교' 9학년(중학교 3년)의 지난달 말 역사 수업 시간. 교사 레오니트 피르소프씨가 소련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생 알렉세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이젠 남의 나라인데 우리가 굳이 알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알렉세이 등 많은 학생들은 "그루지야는 러시아의 적이나 다름없고 러시아를 뺀 나머지 14개국 모두 제 갈 길을 가는데 우리가 굳이 그 나라들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련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후 레닌이 같은 슬라브족인 우크라이나·벨라루스를 통합해 1922년에 만든 나라다. 레닌에 이어 스탈린은 서구에 맞선 공산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1924년부터 주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을 연방 내로 편입시켰고, 2차대전을 앞둔 1940년에는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을 무력으로 압박해 연방에 포함시켰다.
◇4개 블록으로 나뉜 15개국
하지만 강제적으로 결합된 이질적인 나라들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소련이란 '지붕' 아래 살던 15개국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계기로 독립을 모색하다가 1991년 12월 소련 해체와 함께 모두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영토가 넓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고난의 20년을 보냈다. 이들에겐 서구나 러시아, 둘 중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는 달리 생존방법이 없었다.
역사학자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하원 국방위 부위원장은 "희망 속에 독립한 15개국이 지난 20년 동안 추구해온 생존방식에 따라 4개의 그룹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슬라브족 국가들인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재통합을 모색 중이다. 거대한 러시아의 존재에 불안감을 느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는 EU와 NATO 가입을 성급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서방이 러시아와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가입협상을 중단하는 바람에 현재 어정쩡한 상황에 처했다. 발트 3국은 2004년 EU 회원국이 됐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장기 독재와 자원 부족에 따른 빈곤의 늪에 빠진 채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에 기대고 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이고리 야코벤코 박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을 막기 위해 각국에 특정산업만을 육성한 스탈린 정책의 유산 때문에 이들은 독립 후에도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약했다"고 말했다.
◇중앙아는 러시아 의존도 심화
모스크바 남부 초플르이스탄의 노브이 체료무시키 시장. 이곳 200여 점포의 종업원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 출신들이다. 타지키스탄 출신 근로자 파르핫(19)은 "모스크바 시민의 월평균 수입 3만루블(약 110만원)은 우리나라에선 1년을 벌어야 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파르핫처럼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유입되는 인구는 연간 7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교역에서 러시아 의존도는 70% 이상이다. 15개국이 정치적 독립을 이루기는 했으나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그루지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러시아의 '경제적 위성국'이 돼 가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내년 대선에 도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소련의 재통합을 뜻하는 '소비에트 연방 2.0'을 추진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푸틴은 10월 4일자 이즈베스티야 기고문에서 "2012년 1월 1일부터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의 단일경제공동체가 출범하고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도 동참시켜 '유라시아연합'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모스크바에 사는 키르기스 출신 불법근로자 굴나즈씨는 "지금처럼 궁핍하게 살 바에는 러시아에 편입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알렉산드르 두긴 박사는 "옛 소련 국가들을 규합하려는 푸틴의 구상은 서방에는 공포로, 중앙아시아에는 당근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의 유라시아연합은 경제적 차원… 서방 경계심 지나치다"
조선일보 모스크바=권경복 기자
정치 애널리스트 바비치 박사
싱크탱크 '러시아 프로파일'의 드미트리 바비치<사진> 수석애널리스트는 푸틴 러시아 총리의 '유라시아연합 창설=소련의 재통합' 시각에 대해 "푸틴은 20년 전 해체된 소련의 재통합을 시도할 만큼 우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바비치 박사는 러시아 권력 핵심부의 정책에 정통하다.
―소련 재통합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푸틴이 유라시아연합을 추진하는 것은 순수한 경제적 차원으로, 러시아와 이웃 국가들의 교역·협력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유라시아연합과 소련 재통합을 연결짓는 것은 서방의 지나친 경계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서방은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다.
"시리아 문제의 경우 푸틴은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물러나고 반군이 정권을 잡으면 아사드보다 더 나쁜 정권이 수립될 것을 우려한다. 북한·이란에 대한 태도도 비슷한 맥락이다. 푸틴은 이들 국가를 우호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그 나라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서방의 제재 등에 반대한다."
―푸틴의 복귀는 어떻게 봐야 하나.
"푸틴 복귀는 서방에 좋은 뉴스다. 그간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가끔 다른 소리를 내 서방의 혼선을 불렀다. 그러나 향후 푸틴의 목소리만 나올 것이기 때문에 정리가 될 것이다."
태평양서 폴란드까지 … 푸틴, 신러시아 제국 건설 야심
소련 붕괴 20년
유라시아 연합으로 ‘소련 부활’ 노린다
중앙일보 한경환 선임기자 helmutjoongang.co.kr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 비극이다."
내년 3월 4일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는 블라디미르 푸틴(59) 총리의 말이다. 21세기판 차르(황제)를 꿈꾸는 푸틴은 기회 있을 때마다 소련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면서 신러시아 제국 건설의 야욕을 드러내왔다. 8일로 소비에트 연방 해체가 결정된 지 20년을 맞는다. 붕괴 20주년을 맞은 지금 러시아에선 '소련 부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0년부터 8년 동안 러시아를 통치했던 푸틴이 내년에 다시 '대관식'을 치르게 되면 폴란드 국경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새로운 대제국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할 전망이다. 푸틴은 당선되면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다.
◆소련 부활 꿈꾸나=푸틴은 지난 10월 초 유력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에 '옛 소련 국가들의 유라시아 연합' 결성을 촉구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들을 다시 통합해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소장인 드미트리 트레닌은 "20세기 제국을 상실한 지 20년 만에 러시아가 다시 새로운 형태의 통합을 향해 움직일 준비가 돼있다"고 지적했다.
옛 소련에 속했던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정상들은 지난달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유라시아 경제통합에 관한 선언서'에 서명했다. 이들 세 나라는 내년 1월 1일 관세 장벽을 없애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단일경제공동체(CES)를 출범시킨다. 이를 주축으로 나머지 소련권 국가들의 가입을 늘려 2015년까지 유럽연합(EU)과 비슷한 성격의 '유라시아 연합'을 창설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화려한 부상=이런 야심 찬 구상은 소련 붕괴 후 한때 휘청거렸던 러시아가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1990~99년)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러시아를 다시 글로벌 강국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은 푸틴이다. 고유가에 힘입어 러시아는 2000년부터 9년 연속 평균 7%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지난 4년간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인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을 일시 물려주기는 했지만 푸틴은 그동안에도 사실상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미국과 유럽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동유럽이나 옛 소련권에서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 안정에 따른 자신감 회복으로 국제무대에서의 러시아 발언권은 날로 커지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달 "우리는 거대한 스케일로 행동하는 데 익숙한 나라"라 고 말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 빠져있는 미국과는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고 있다. 푸틴은 미국을 세계 경제의 '기생충'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동유럽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하는 계획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새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다. 이를 두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메드베데프가 (미국과의) '리셋(재설정)' 정책을 포기했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20년 전 탱크와 군인들을 철수시켰던 동유럽에서는 루블화를 앞세워 다시 진군하고 있다. 2008년까지 소련 붕괴 후 17년 동안 러시아가 동유럽에 투자한 금액은 24억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3년 투자액은 이보다 많은 28억 달러에 이른다.
◆아직도 산 넘어 산=러시아의 재부상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걸림돌이 널려있다.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엉터리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푸틴을 겨냥해 러시아 지도자들이 계속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 4일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은 과반에 턱걸이했다. 집권당이 선거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제기돼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에서는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혁명을 이루자" "푸틴 없는 러시아를 원한다" 등의 구호가 난무했다.
소수 정당인 야블로코의 대선 후보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통치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부패한 엘리트들이 에너지 수출로 벌어들인 부를 독차지하는 것을 보고 등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로이터통신).
부패는 러시아의 가장 큰 고질병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 1일 발표한 2011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러시아는 183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143위를 차지했다.
석유·가스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구조도 불안 요인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러시아 경제는 언제든지 침체에 빠질 수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푸틴과 러시아의 미래는 결국 경제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평론가 키릴 로고프는 "전체적으로 지지율은 견고하지만 언제 먼지가 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이코노미스트). 소련 붕괴라는 지각 변동은 20년 전에 일어났지만 그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