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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고구려유적답사 3

박근닷컴 2015. 12. 7. 02:11


환인- 상고성자 고분군-비류수 (혼강)가에 오녀산성과같이 오른쪽에 위치



천추묘앞 공부중....

길림성 집안시- 천추묘
장군총(300평)보다7배 큰규묘
광개토왕릉과장수왕의 건축양식과 비슷해서 중국학자들은
고구려18대 고국양왕의능 일것으로 추정.
고국양왕은 광개토왕의 아버지로 고구려의요동진출을 적극적으로 꾀한왕이다.



요양시..요녕성 등탑현 서대요향 관둔촌에...백암산성(연주성) -
성의남쪽으로 태자하가 흐르고 삼국사기양원왕3년에 개축했다는
기록이...547년 이전에 축성된것으로 추측


 요녕성 (연주성)백암산성 성벽

집안시...환도산성 고구려고분 밀집지역

집안시-환도산성 하고분군 -산성하귀족묘지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집안시--동쪽 장군총....고구려석총(돌무덤)

장군총앞 단체

211호묘 단체
집안시..칠성산 211호묘
집안의 서쪽에 자리한 칠성산아래 211호묘는 고구려중기의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왕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나라, 당나라 그리고 6,25때 북한을 지원한 인민군들에 의해 거의 모든 집안지역 
고구려 고분들이 조직적으로 그때그때 중국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도굴되었습니다. 
이 211호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고.. 
하지만 비록 도굴을 당하여 가운데가 푹 꺼졌지만 이를 이어 보면 
뒤쪽 산능성과 너무나 잘 어울리게 봉분이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산천지-장군봉에서 촬영
길가의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山川의 모습. 어느것 하나 낯선 모습은 없었습니다.
내가 사는곳에서 평소에 보아 오던 우리 것 그대로 였습니다.
日帝의 장난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분할하여 넘겨져 버린 우리의 땅 간도였습니다.
잃어버린 그 우리의 땅에 박물관 대학의 일원으로 답사를 다녀 왔습니다.
환한 빛남으로 우리를 반겨 준 민족의 영산 백두산앞에 모두들 숙연해지고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모습을 보여 준다는 천지의 장엄함에 무릎 꿇고 이번 답사여행
감동과유익함이 많았습니다.
첫 장은 장군봉에서 찍은 천지의 모습입니다. 

해발2.744m

장백폭포아래 단체

장백폭포-폭포 오른쪽 시맨트로 줄지게 만든길이 내려왔던길입니다.
물줄기가 송화강으로 흐른답니다.


백두산에서 장백산아래지역을 내려다본 풍경(이도백하)


천지 주변에 자생하는 두매양귀비입니다.


백두산 천지 안..북한군 초소


  천지물을 만져보고....

이도백하..백두산지역 장백산입구 단체

백두산 천지앞

백두산은 해발 2,744m 함경남북도와 중국동북지방의 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선을 이루고있다
한민족의 발상지로 개국의터전으로 숭배되어왔던  민족의 영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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