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석가탑에서 출토된 또 한 점의 다라니경,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석가탑에서 출토된 또 한 점의 다라니경,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복원된 석가탑 출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 126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51년(경덕왕 10)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목판 권자본(卷子本)이다.
이 판본은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3층석탑(석가탑) 보수공사중 2층 탑신부에서 금동제 사리함 등의 여러 유물과 함께 발견되어 이들 유물과 함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형태를 살펴보면 전체길이 약 650㎝, 종이의 폭 6.5~6.7㎝, 위아래 판광(板匡) 5.3~5.5㎝이다.
발견 당시 위는 상당히 산화되어 앞부분이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있을 정도로 많이 손상되어 11항이나 없어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1989년 수리하여 거의 복원되고 현재는 3줄만이 일실된 채로 남아 있다.
이 경의 간행연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이 있다.
첫째, 많은 학자가 수긍하는 751년경이라는 설이다.
석가탑은 751년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이후에는 수리된 기록이 없으며 함께 발견된 유물도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내용 가운데 대체로 690~704년에 사용된 측천무후자(則天武后字) 4종이 총10회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706년경이라는 설이다. 〈다라니경〉은 704년에 한역(漢譯)되었고 한국에는 706년 황복사탑에 이미 모셔졌기 때문이다. 셋째, 고려시대라는 설이다. 유물 가운데 나타난 관직명칭이나 유물이 고려시대의 것이라 볼 수 있으므로 고려시대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한편 중국에서 목판을 가져다가 찍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외국인도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는 751년경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 다라니경은 글자체가 방필(方筆)에 원필(圓筆)을 곁들인 육조체(六朝體)이며 판각술은 비교적 치졸해 초기의 판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770년경에 인쇄되어 그동안 세계 최초의 목판본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한국의 〈다라니경〉 7종 중 4종만을 발췌·판각한 것이며 판각술도 치졸하고 인쇄방법도 훨씬 뒤떨어진 데 반해 이 경은 완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판각술도 매우 정교하고 인쇄도 일본의 것보다 더 발전된 방법이 사용되었다.
즉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이면서 훌륭한 형태를 갖춘 목판본이다. 이 경의 발견으로 한국에서 목판 인쇄술이 발명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이 다라니경은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가탑사리함 유물
그런데 이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형태가 같은 또 하나의 유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7년 3월 26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서 확인이 된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유물이지만 그동안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학계에서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석가탑 유물 관련 종합 경과 보고’ 기자회견에서 “1966년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당시 다라니경과 크기가 거의 같은 ‘직물에 싸인 종이뭉치’ 유물이 함께 발견됐으며 이 유물을 현재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인 다라니경과 형태가 같은 또 하나의 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박물관 측은 “불교사와 언어학, 고활자 연구자, 보존과학자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석가탑 유물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석가탑 중수기(重修記·수리 내용을 적은 글·1024년)가 담긴 묵서지편과 이 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또 “1988년 다라니경을 보존처리하면서 이 유물을 확인했으나 ‘두루마리가 한 덩어리로 굳어 있어’ 보존처리가 어려웠다”며 “다라니경만큼 높은 비중으로 취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유물은 석가탑 유물 현황에서 ‘기타 유물’로 분류돼 있다. 이 두루마리는 국보로 지정돼 있지 않다.
석가탑 사리함 출토 모습
이 유물에 대해 국보 126호 다라니경과 동시대의 ‘다라니 목판인쇄물’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다라니는 범문을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 것을 뜻한다. 다라니경은 부처의 제자들이 부처에게서 들은 진언(眞言)을 적은 것으로, 국보 126호 다라니경에는 여섯 가지 소(小)다라니의 작법(作法)과 이로 인한 공덕(公德)이 담겨 있다.
박상국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장은 “다라니경에 따르면 소다라니 중 상륜(相輪) 다라니와 자심인(自心印) 다라니를 99번씩 써서 탑 속에 따로 봉안하게 했으며 바라밀(번뇌가 없는 피안으로 건넌다는 뜻)을 모두 성취하려면 네 가지 다라니를 각각 99번씩 써서 탑에 넣으라고 돼 있다”고 말했다.
즉, 똑같은 다라니를 99번이나 써서 탑 안에 넣을 것을 요구한 다라니경의 내용이 다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목판인쇄물의 발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이 해독한 중수기 내용은 이 유물이 다라니 목판인쇄물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 준다. 안 위원은 “‘중수기에 무구정광다라니(경) 9편과 무구정광다라니경 1권’이라고 적혀 있다”며 “앞에 괄호를 친 것은 박물관이 중수기 원문에서 이 글자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뒤의 다라니경은 국보 126호 다라니경을 가리키고 앞의 것은 다라니 인쇄물을 가리킨다는 의미다.
그는 “이 유물이 국보 126호 다라니경과 달리 펼쳐지지 않은 채 비교적 온전하게 있었던 것은 소다라니 여러 벌을 감싸면서 흩어지지 않게 실로 꽁꽁 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석가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종이뭉치
두루마리 유물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국보 126호 다라니경의 종이와 똑같은 크기, 두께의 종이를 제작해 두루마리를 만든 뒤 비단 모형으로 감싸 실로 묶는 실측 실험 결과 ‘또 하나의’ 두루마리 유물과 크기가 거의 같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이 유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8세기의 목판 인쇄물로 밝혀질 경우 우리나라는 또 하나의 세계 최고 목판 인쇄본을 갖게 된다. 1966년 발견 이후 이 두루마리가 41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안에서 ‘숨겨진 유물’로 남은 것은 발견 당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데다 보존처리가 시작된 1989년까지도 유물 발견 정황에 대한 정보가 극히 부족했기 때문. 석가탑 유물 보존처리 보고서에도 사진만 실려 있을 뿐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1989년 보존처리 작업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는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두루마리가 한 덩어리로 굳어 있어 당시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또 하나의 다라니경은 언제쯤 복원이 되어 우리 눈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