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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왜곡된 무영탑(無影塔)

박근닷컴 2010. 6. 15. 22:03

문화재 칼럼 - 신라문화재해설사 정 기열


왜곡된 무영탑(無影塔)

한국 사람으로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불국사 석가탑(국보 21호)인 무영탑(無影塔)의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이야기다.

   불국사 창건 이야기는 우리역사에서 『삼국유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 신문대(大成孝二世 神文代) 條에 의하면 불국사는 신라 35대 경덕왕 10년(751-천보 10년 신묘)에 재상 대성이 세워, 혜공왕 10년(대력 9년 갑인) 12월 2일에 대성이 죽음으로 국가에서 필역(畢役)하여 완성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에 대한 기록은 없다,

『불국사사적기』에 보면

서석탑(西石塔-석가탑)명칭은 [석가여래상주설법지보소(釋迦如來常住說法之寶所)]

동석탑(東石塔-다보탑)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지찰당(多寶如來常住證明之刹幢)]

라고 기록하고 있어 조선시대 후기에 줄인 말로 석가탑⦁다보탑이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한 기록인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의 원문(原文)은

東多寶塔 四面欄楯莊嚴 西釋迦塔 一名無影塔 諺傳創寺時 匠工自唐來人

有一妹阿斯女 要訪到通來 則大功未完不可陋身 許納明旦坤方十里許

自有天然之澤 臨彼則庶可見矣 斯女依從往見 則果鑑而無影塔故名.

원문을 설명하면, 동쪽 다보탑은 사면에 난간을 둘러 장엄하고, 서쪽 석가탑은 일명 무영탑이다. 탑을 만들 때에 전하기를 당나라 석공이 와서 탑을 쌓을 때, 누이동생 아사녀가 찾아와서 만나기를 청하니 “큰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부정(不淨)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하고, 동남쪽으로 십리를 가면 못이 있으니 내일아침에 못에 탑 그림자가 비추면 만날 수 있다고 하여, 아사녀는 다음날 아침에 못에 가서 기다렸으나 탑의 그림자는 비추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비추지 않았다.

   이야기를 소설가 현진건(玄鎭健-1900~1941년)이 무영탑이라는 소설로 각색 하여 당나라 석공을 백제의 아사달과 아사녀로 윤색하여 1939년 2월 동아일보에 연재소설로 발표하였다. 그 후로 불국사 석가탑은 백제의 아사달이 만든 무영탑이 되었다. 이야기 꺼리 소설이 나라의 문화사를 바꾸어 놓았고, 지금의 문화재청 문화재 설명서에서도 소설속의 무영탑 이야기가 정설로 이야기 하고 있다.

   해설사 회원들은 무영탑 이야기를 바로 잡아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화계 유의건의 문집인『화계집』에 보면, 경주의 신라왕릉을 놓고 김씨 문중과 박씨 문중이 서로 싸우니 유의건이 말하기를「신라 때 사람이 지금 살아 있다하여도 기록에 없는 릉을 누구의 것인지 어찌 알겠소.」하였다. 

※ 삼국유사는 고려 충열왕 11년(1284년)에 일연(一然) 스님 편찬.

※ 불국사고금창기는 조선 영조 때 활암(活庵) 스님 편찬.

※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4년(1145년)에 김부식(金富軾)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