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경상도

경북영주-보물115호-이천동 석불상

박근닷컴 2010. 8. 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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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115호-이천동 석불상

거대한 자연암석에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다른  돌로 조각해  올려놓았다.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바위에선각(線刻)되어 있으므로 마애불(磨崖佛)이라해도 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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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사라는 작은절

지금의절은 20세기이후에 다시지어진 대웅전과 요사채 하나뿐인

조그만한 절...

절 경내로 들어가면 이천동석불(제비원석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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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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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얼마나 크던지...바로앞에선 그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가 아프도록 높이
쳐들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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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오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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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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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미륵불(彌勒佛)로 통하고 있으나 서향(西向)인 점을 들어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로 

아미타불-중품하생(中品下生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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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을 보고 나오려다 산위를보니 탑이 있다..

지나가는 공양주 아주머니께 길을 물으니 없다고 하신다....그냥 여기서 보고 가라는데..

젊어뵈는 주지스님께서 저만치서 듣고계시다가

어떤 남자분에게 가르쳐 주라고하시네...(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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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동 삼층석탑

이천동석불입상 뒤쪽 산위 암벽에 단층기단으로 삼층석탑이있다.

원레 거대한 석불상(보물 제115호) 뒷편에 흩어 있던 것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

예전에는 이곳이 연미사의 자리였다고 한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두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며,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솟아올라 가벼움이 있다.

주위의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탑으로,

석불상과 같은 시기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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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앞에서 석불상의 뒷모습을 ...머리의 뒷부분은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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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제비원에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곳에서 심부름을 하던 연(燕)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착하고 불심이 깊은 처녀 연이를 마을총각들은 사모하였다. 이웃마을에 김씨성을 가진 마음씨 고약한 부잣집 총각조차 연이 처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마음씨 고약한 김씨 총각은 비명에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총각이 살아생전에 악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날 것인데, 건너 마을의 연이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행 창고가 가득 쌓여있으니 좀 꿔서 쓰면 다시 살아 돌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저승에서 연이의 선행(善行)을 빌려쓰고 살아난 총각은 이승에 돌아와 연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기의 재물을 나눠주었다.
큰 재물을 얻은 연이는 이를 모두 부처님을 위해 쓰기로 하고 법당을 지었다. 큰 법당을 짓느라 5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마지막날 기와를 덮던 와공이 발을 헛디뎌 지붕에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높은 지붕에서 떨어진 와공의 몸이 마치 기왓장처럼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순간 와공의 혼이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고 부르고 이 일대를 제비원 또는 연미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이는 서른 여덟이 되던 해 동짓달 스무사흗날에 죽었는데, 그날 저녁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큰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의 석불이 나타났다고 한다. 공덕을 쌓은 연이가 부처로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이 부처를 미륵불으로 여기고 치성을 드렸다(아들을 낳게 해달라거나 집안이 두루 편안하게 해달라고 빈다).
무가의 성주풀이에도 "성주의 근본이 어디냐?"로 시작하여 성주의 근원이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라고 한다. 성주란, 민간 신앙에서 집집마다 그 집의 부귀영화와 평안을 지켜주는 신을 말한다. 그러한 신의 근본지로 여겨졌다는 것은 민간 신앙의 기원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있는 미륵불이니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전설에는 법당과 석불을 도선국사가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도선이 지녔다는 신통력에 기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참조.

* 제비원이란 이름에서 '원(院)'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을 말한다.

영남에서 충청도나 경기도, 서울로 갈 때에는 안동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야했는데, 그 곳에 있던 것이 제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