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유적답사

♠ 통일전-헌강왕릉-정강왕릉

박근닷컴 2010. 5. 23. 18:38

- 통일전

 

통일전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다가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국민의 전당이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역사적 성업을 완수한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길이 찬양하고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발전하는 조국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이 곳에 통일전을 조성하였다.

통일전에는 태조무열왕, 문무왕, 김유신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회랑에는 삼국통일의 기록화가 전시되어있다. 경역에는 삼국통일기념비와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장군의 사적비가 서 있다.

 

 

화랑교육원

1971년 착공하여 1973년에 전국 최초의 학생교육원으로 개원한 화랑교육원은36,000여 평의 대지위에 웅장한 한옥의 건물로 지어진 정신교육의 전당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던 화랑도의 이념인 유,불,선을 근본으로 하는 충성, 효도, 신의, 용기, 자비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의 새 일꾼을 양성하고자 건립된 기관으로 전국의 남, 여 고등학생, 대학생 등을 주된 피교육자로 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등 큰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성화가 채화 되는 곳으로서 화랑이나 원화의 기상을 이어가자는 뜻으로 채화가 이루어 진다. 성화채화 기념관(연건평 200평)이 94년 준공되어 일반인에게 관람되고 있으며 바로 이웃에 있는 통일전과 함께 역사적 의의가 있다.

 

수용인원 : 204명

연락처 : 054-748-1112

 

교통안내 : 경주시내에서 울산방면 7번국도 따라 4km 정도 지점에서 우회전

이용요금 : 없음 / 단체로 견학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협조공문을 보내야 한다.

 

 전 헌강왕릉

 

전 헌강왕릉

 

이 능은 일찍이 도굴의 피해를 입어 1993년 우기에 석실 개석과 벽 일부가 내려앉아 내부의 긴급 수습 조사를 거쳐 복원되었다. 조사 결과 석실은 평면 방형에 궁륭상천정(穹륭狀天井)이었으며, 남쪽으로 난 연도는 석실 동쪽으로 편재되어 있었다. 석실 서벽에 붙여 1대의 1인용 시상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석제 두침(石製 頭枕)과 족좌(足座)가 출토되었다. 부장품은 모두 도굴되었으나 인화문토기편(印花紋土器片)이 약간 수습되었다. 그런데 석실의 구조나 토기는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시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은 본명이 김정(金晸)이고 경문왕의 장자이며, 왕비는 의명부인(懿明夫人)이다. 이 왕 때 백성의 집은 지붕을 갈대로 덮지 않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짓는 데는 나무를 쓰지 않고 숯으로 지었으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등을 바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886년 7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헌강(憲康)이라 하고, 보제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정강왕릉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강왕릉은 경주 남산(南山)의 동록 통일전(東麓 統一殿) 바로 북쪽 송림 속에 둘러싸여 있다. 그 북쪽에는 선왕(先王)인 헌강왕릉이 인접하여 있다. 원형봉토분으로 지름 15.7m, 높이 4m이다.

봉분의 밑부분은 가공한 장대석을 3단으로 쌓아 호석을 돌렸다. 가장 아랫단 장대석은 지대석처럼 약간 밖으로 내밀게 놓았고, 그 위 2단은 이보다 약간 들여 쌓았다. 그러나 별도의 갑석은 없다. 이외에 난간 장식이나 십이지신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구조의 호석을 가진 신라왕릉으로는 이 능과 헌강왕릉이 있다. 봉분의 전면에는 얕은 석단 위에 작은 석상이 놓여 있고, 석단에서 조금 떨어진 아랫부분에 장대석이 일렬로 놓여 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定康王, 재위 886-887)은 본명이 김황(金晃)이고, 경문왕(景文王)의 둘째아들로 형인 헌강왕에 이어 즉위하였다. 재위기간이 짧아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으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887년 7월에 왕이 죽자 시호를 정강(定康)이라 하고 보제사(菩提寺)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현재 정강왕릉과 헌강왕릉의 북쪽 가까이에 통일 신라 석불좌상이 있어 그곳을 보제사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능과 인접하여 있고 호석의 구조도 같은 형식인 헌강왕릉의 내부가 1993년 조사되었는데, 그 석실 구조와 출토유물은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이 왕들의 재위 시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경주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릉원내 황남대총/천마총  (0) 2010.05.24
♣ 창림사지  (0) 2010.05.23
♠ 서출지/남산리사지  (0) 2010.05.23
♧ 사적28호 성덕왕릉  (0) 2010.05.23
♧ 경주 성덕왕릉 귀부  (0) 201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