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사 연구자인 송기호(55)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요즘 토목학자들을 상대로 한국사를 강의한다. 2005년 2월부터 매달 대한토목학회지 《자연과 문명의 조화》에 싣기 시작한 게 벌써 5년 가까이 됐다. 단군부터 현재까지 한국사 전체를 종횡무진하는 송 교수의 강좌를 꿰뚫는 주제는 생활사이다. 국가니 제도니 하는 거창한 주제는 집어던지고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원사료(原史料)를 중심으로 이야기체로 풀어낸다.
"공학 전문가들도 인문학적 교양에 목말라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나이 들수록 역사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지 않습니까?"
송 교수는 "토목학회장을 지낸 교수님이 아들과 함께 제 글을 돌려 읽는다고 전할 만큼 애독자들이 많다"고 했다. 서울대출판문화원이 펴낸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시리즈는 이 토목학회지에 실린 글을 3권으로 묶은 것이다. 한국인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땅에 태어나서》와 가족과 의식주를 다룬 《시집가고 장가가고》, 신분 세계와 유토피아를 그린 《말 타고 종 부리고》다.
"대학에 들어왔을 때 제일 괴로웠던 것은 우리 역사 개설서가 너무 재미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혹 틀리더라도 삶에 바탕을 둔 한국사를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송 교수의 책이 그저 그런 대중용 해설서가 아니라는 것은 치밀한 준비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1998년부터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면서 자료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은 꼬박 7년을 걸려 완독했다.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쓴 일기인 《쇄미록》 같은 일기류와 구한말과 일제시대 서양인들의 여행기까지 섭렵했다. 그렇게 추려낸 원고지 2만장 분량의 자료들을 1부 '인간과 자연' 2부 '가족과 혼인' 3부 '사회와 신분' 4부 '국가와 제도' 5부 '외교와 이민족'으로 분류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1·2부와 3부 절반까지의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송 교수의 책에는 통념을 깨는 대목이 많다. '빨리빨리'로 알려진 한국인의 조급성을 1960년대 이후 군사문화의 잔재로 여기는 이들에게 《세종실록》을 들이댄다. 세종이 근정전을 보수하기 위해 기와를 굽도록 지시하면서 내비친 걱정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매사에 빨리하고자 하여 정밀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정밀하고 좋게 구워서 비가 새어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하겠는가?'(1433년 7월 12일) 그래도 의심스럽다면, 《광해군일기》에 관청이 임금에게 건의한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서 끝과 시작이 아주 현격하게 차이가 납니다. 급하면 일에 착수하여 남에게 뒤질까 걱정하고, 느긋해지면 그만두어 서로 잊어버리고 맙니다.'(1608년 11월 9일)
송 교수는 또 엄숙한 장례식장이 왁자지껄한 술판으로 바뀌기 일쑤인 요즘의 상갓집 풍경을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과 연결시킨다. '처음 사망했을 때에는 곡하며 울지만, 장례를 치를 때는 북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죽은 사람을 보낸다.' 중국 역사책 《북사(北史)》의 고구려전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리학이 득세한 조선 후기에는 풍악을 울리며 요란하게 장례를 치르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영조실록》에서 보듯 그 풍속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시독관 정휘량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예의로 나라를 세워 상제(喪制)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근래에 풍속이 점차 허물어져 백성들이 상을 치를 때 중이 염불을 하기도 하고 풍악을 잡으며 뒤를 따르기도 합니다….'(1742년 8월 28일)
송 교수는 "사료를 통해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나는 사료와 사료를 연결해주는 충실한 안내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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