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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광남서원/충비단량비

박근닷컴 2011. 3. 24.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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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門樓). 광남서원의 입구입니다. 왼쪽 건물이 서재(書齋), 오른쪽 건물이 동제(東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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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충정공 지봉 황보 선생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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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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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묘우(忠貞廟宇) : 봄 가을로 향(향사)을 지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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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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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단 안의 비석 중 가운데 있는 서(瑞)의 비석(흠(欽) 의 손자). 좌측은 흠의 아들 단(湍)의 비석

우측은 흠의 증손 강(剛)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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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비단량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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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추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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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서원 (廣南書院)

포항문화재 0913-24-002


뇌성산(磊城山) 기슭에 위치한 광남서원(廣南書院)은 조선(朝鮮) 세종(世宗)때 병조판서(兵曹判書), 평안 함길도 도체찰사(都體察使), 우의정(右議政), 문종(文宗)때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단종(端宗)을 보좌(補佐)하다 단종(端宗) 1년(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살해(殺害)된 황보 인(皇甫 仁)과 그의 두 아들 참판공(參判公) 석(錫)과 직장공(直長公) 흠(欽)을 제향(祭享)하며 사학(私學)의 기능으로 학문(學文)을 연구하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정조(正祖) 15년(1791년) 11월에 건립하여 세덕사(世德祠)라고 불렀으며, 순조(純祖) 31년(1831년) 8월에 지역유림(地域儒林)들의 논의(論議)로 광남서원(廣南書院)으로 승호(陞號 : 이름을 높임)하였다.

그런데 고종(高宗) 5년(1868년)에 본원(本院)이 훼철(毁撤 : 헐리게 됨)되어 1900년(庚子)에 본원(本院) 유허(遺墟)에 후손(後孫)들이 재 건립(建立)하여 광남서당(廣南書堂)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941년(辛巳)에 지역유림(地域儒林)들이 논의(論議)하여 충정묘우(忠貞廟宇)를 중건(重建)하여 춘추향(春秋享)을 회복(回復)하고, 1949년에 문루(門樓)와 동제(東齊) 주사(廚舍)를 건립(建立)하였고 2001년에 서재(書齋)를 국고(國庫) 보조(輔助)로 신축(新築)하였다.

장기유림(長鬐儒林)과 후손(後孫)들은 매년 음력2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봉행(奉行)하며 그 숭고(崇高)한 사생취의(捨生取義 : 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돌보지 아니 함) 정신(精神)을 추모(追慕)하고 있다.


 

추원단(追遠壇)


직장공(直長公) 황보 흠(皇甫 欽)의 삼대(三代) 즉 <子 : 단(湍)>. <孫 : 서(瑞)>. <曾孫 : 강(剛)>의 묘(墓)가 실전(失傳)되어 1936년(丙子)에 추원단(追遠壇)을 설단(設壇)하여 후손(後孫)들이 매년 10월에 추모(追慕) 봉향(奉享)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기존의 비(碑)와 비각(碑閣)이 이지러져 1992년(壬申) 포항시(浦項市) 보조금(補助金)으로 비(碑)와 비각(碑閣)을 새로 건립(建立)하였다.



충비단량(忠婢丹良)


단량(丹良)이란 1453년 단종1년 계유정난(癸酉靖難)때 영의정(領議政) 황보 인(皇甫 仁)의 여하인(女下人)을 말하며,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文宗)의 아우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王)이 되려는 야심(野心)을 품고 이들을 제거(除去)한 정변(政變)으로써 황보 인(皇甫 仁)의 영예(榮譽)가 극단(極端)에 이르렀고 이 화를 입으면서 세 아들 참판공(參判公) 석(錫)과 직장공(直長公) 흠(欽), 그리고 참판공(參判公) 석(錫)의 아들 원(源)과 문(汶) 등 다섯 사람이 모두 화를 당하였다.

1453년 10월 10일 밤에 영의정(領議政) 인(仁)은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살해(殺害)될 것과 가문(家門)에도 이 영향이 미칠 것을 예측(豫測)하였고, 또 영천황보씨(永川皇甫氏)라는 대(代)를 잇기 위해 그의 손자(孫子) 단(湍)을 단량(丹良)에게 멸문(滅門)의 칼날을 피하도록 부탁하였다.

단(湍)의 아들 휘(諱)는 서(瑞)이며, 단(湍)의 손자(孫子)의 휘(諱)는 강(剛)이고, 단(湍)의 증손(曾孫)의 휘(諱)는 억(億)이다.

단량(丹良)은 인(仁)의 손자(孫子) 단(湍)을 물동이에 숨겨 머리에 이고, 한양을 탈출하여 영의정(領議政) 인(仁)의 막내사위인 윤당(尹塘)이 살고 있는 경상북도 안동(安東) 닥실(현재 봉화군 상운면)까지 팔백여리를 걸어서 피신해온 단량(丹良)에게 노자(路資)를 주면서 “여기서는 안심할 곳이 아니니 어디론지 땅 끝까지 가서 안전한 곳에서 살되 어미처럼 이 아이를 키워서 조상에 대한 내력을 일러 주라”는 윤당(尹塘)의 말과 영천황보씨(永川皇甫氏)의 대(代)를 잇기 위해 무작정 걸어온 곳이 바로 땅의 끝인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보면 구만리의 집신(集臣)골이었다.

단(湍)을 친자식(親子息)처럼 키워 조상(祖上)에 대한 내력(來歷)을 일러주었으며, 증손(曾孫) 억(億)이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성동3리로 이주(移住)하여 새로운 세거지(世居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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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충정공지봉황보선생묘소 전경

 

광남서원 주변 시설

생활 체험장( 숙식 및 회의실 사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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