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자금성 내에는 황제가 휴식을 취하던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권근재(倦勤齋)라는 건물이 하나 있다. 청나라 건륭황제가 집무 도중에 잠깐씩 짬을 내어 쉬던 황제의 휴게소였다. 2004년 권근재 내부가 낡아서 먼지를 털어내고 보수하던 도중 벽면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옛날 그림을 발견하였다. 벽면을 따라서 170제곱미터의 넓이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보수하려고 그림을 떼어보니까 특이한 종이가 나타났다. 겉면의 그림은 중국의 선지(宣紙)에 그려져 있었지만 그림 뒤에 배접한 종이는 뽕나무 뿌리의 껍질로 만든 상백지(桑白紙)였던 것이다.
상백지는 그 질감이 폭신폭신하면서도 천처럼 질긴 종이였다. 중국 선지보다 몇 배나 질기면서도 늘어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림 뒤에다가 붙여 놓았던 것이다. 닥나무 종이는 질기기는 하지만 늘어나는 성질이 약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상백지는 중국에는 없는 고려지의 일종이었다. 조선에서 만들어 자금성에 납품한 종이였다. 원래 뽕나무 뿌리인 상백(桑白)은 한약재로도 쓰인다. 작두로 잘라보면 실낱 같은 성분이 드러난다고 한다.
자금성 고궁박물원 보수 책임자가 이 상백지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여러 군데 수소문해보았지만, 한국에는 이미 절판된 종이였다. 그러다가 뜻밖에 중국에서 상백지 제조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북성(河北省) 천안현(遷安縣)에서 지금도 상백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1893년 무렵에 이현정(李顯靜)이라는 중국 종이상인이 만주에서 종이를 팔러 다니다가 조선의 상백지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여기에 반해 당시 평양에 있었던 상백지 공장에 가서 5년간 위장취업을 했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조선에서 기술을 익힌 다음에 중국으로 건너가 하북성 천안현에다가 상백지 공장을 차렸고, 그 후예들이 지금까지도 상백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후로 중국의 일급 서예가들과 화가들이 이 종이를 앞 다투어 매입하였음은 물론이다.
현재 천안현에는 고려지 수공업자가 700가구나 되고, 종사자는 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생산량은 16만장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고려지(상백지)를 복원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상백지는 그 질감이 폭신폭신하면서도 천처럼 질긴 종이였다. 중국 선지보다 몇 배나 질기면서도 늘어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림 뒤에다가 붙여 놓았던 것이다. 닥나무 종이는 질기기는 하지만 늘어나는 성질이 약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상백지는 중국에는 없는 고려지의 일종이었다. 조선에서 만들어 자금성에 납품한 종이였다. 원래 뽕나무 뿌리인 상백(桑白)은 한약재로도 쓰인다. 작두로 잘라보면 실낱 같은 성분이 드러난다고 한다.
자금성 고궁박물원 보수 책임자가 이 상백지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여러 군데 수소문해보았지만, 한국에는 이미 절판된 종이였다. 그러다가 뜻밖에 중국에서 상백지 제조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북성(河北省) 천안현(遷安縣)에서 지금도 상백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1893년 무렵에 이현정(李顯靜)이라는 중국 종이상인이 만주에서 종이를 팔러 다니다가 조선의 상백지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여기에 반해 당시 평양에 있었던 상백지 공장에 가서 5년간 위장취업을 했다고 한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조선에서 기술을 익힌 다음에 중국으로 건너가 하북성 천안현에다가 상백지 공장을 차렸고, 그 후예들이 지금까지도 상백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후로 중국의 일급 서예가들과 화가들이 이 종이를 앞 다투어 매입하였음은 물론이다.
현재 천안현에는 고려지 수공업자가 700가구나 되고, 종사자는 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생산량은 16만장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고려지(상백지)를 복원해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