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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강안 (61.♡.133.2) 날짜 : 08-11-20 13:40 조회 : 602 | ||
서서 갈비의 원조, 혜원
최근에 꽤 화제가 되는 TV 드라마가 ‘바람의 화원’ 이라 합니다.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한 여배우의 남장 연기가 꽤 볼 만해서인지 아니면 스토리가 재미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옛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였던
사실 저는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원작인 [바람의 화원]이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사실 세간의 칭송과는 다르게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란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지만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할 경우는 자칫 역사적 사실을 왜곡 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에게 ‘
역사적으로 불분명한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가정도 가능하겠지만
차라리 소설적 재미와 글쓰기 기술이란 측면을 배제한다면
[바람의 화원]은 제가 읽은 수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그림이 많이 삽입된 소설입니다.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의 명작들이 즐비하게 나타나고 보물 527호인 ‘단원
그런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지난 주말에 전시가 끝난 간송미술관 기획전에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드라마에서 소개된
물론 제 개인적으로 [단원 풍속도첩]이 국보로 지정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현재 우리시대가 혜원의 그림을 어떤 위상으로 바라보는지를 가름할 수 있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혜원전신첩]은 30면으로 되어 있는 가로 35.2㎝, 세로 28.2㎝의 그림책입니다. 이 화첩은 당시 일본인 거상 토미타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는 화첩의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어 담뱃값 포장지로 이용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간송
결국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거금을 들여 이 화첩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곱게 새로 표구도 했습니다. 이 화첩을 가지고 귀국했을 때 간송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화첩의 이름, 즉 제첨이 [혜원전신첩]인데 문화재청 공식 이름은 [혜원풍속도]라고 되어 있어 약간의 혼선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보 지정 당시 왜 원래 화첩의 이름인 [혜원전신첩]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전신첩(傳神帖)이란 말에서 풍기는 인물화첩이란 느낌이 전체 화첩의 성격을 축소시킬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혼자 유추해 보지만 그래도 엄연히 화첩의 이름이 있고 또 그 이름을 적은 분이 우리나라 근대 미술사학계의 종장이자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었던 위창
그림 한 점 감상하려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 졌네요. 오늘 같이 감상해보고 싶은 그림은 [혜원전신첩] 중 드라마에서도 소개되었다는 ‘주사거배酒肆擧盃’입니다. ‘주사거배’는 ‘술집에서 술을 들다’ 라는 뜻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그림입니다. 종이에 채색, 28.2× 35.6㎝, 간송미술관
주사거배의 뜻은 ‘술집에서 술잔을 들다’ 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인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보여주는 술집이 기생집도 아니고 주막도 아닌 ‘선술집’의 풍경이란 점입니다. 우리나라 회화 중 선술집을 묘사한 유일한 그림이기에 이 그림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주점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문헌에 의하면 고려 성종2년에 송도에 주점을 허가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민초들이 이용하는 현대적 의미의 주점은 조선 후기 숙종 때 본격적으로 널리 생겨납니다. 조선 후기에 주점이 널리 퍼진 이유는 주점은 화폐 유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화폐를 널리 유통시킬 목적으로 관용주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 후 화폐의 유통과 지역간 상거래의 발달로 술뿐 아니라 잠자리와 음식까지 제공하는 주막이 본격적으로 퍼져 19세기 조선 말기까지 전국 곳곳에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주막이 들어 서게 됩니다.
단원풍속화첩, 지본담채,
만약 전부 서서 마시는 선술집에서 배짱 좋게 앉아 술을 마시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공공연하게 시비를 걸어 큰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합니다. 그림을 보더라도 그 누구도 앉아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선 인물을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풍속도는 우리가 쉽게 수긍할 수 있고 보는 즉시 바로 느낌이 오는 그림이라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풍속도의 가장 재미있는 감상법은 인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그림이 어떤 광경, 어떤 순간을 을 묘사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의 등장인물은 총 6명인데 남자가 다섯에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한 명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붉은 옷을 입고 노란 초립을 쓴 가운데 사람입니다. 아마 이 복장
[야금모행] 혹시 기생과 2차(?) 나가는 풍경 아닐까?
별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것 같은 선비를 모습이 재미있다.
[유곽쟁웅] 기생을 두고 쟁투가 벌어졌다. 맞은 사람을 어르며 사건을 수습하려는 별감과 다시 옷을 입는 승리자의 자신만만한 모습.
붉은 철릭의 노란 초립, 이 복장은 바로 조선 관헌 중 별감의 전형적인 복장입니다. 별감은 다른 말로 이란 액례라 부르는데 ‘액정서 하례’ 의 준말로 액정서 소속 관헌을 낮춰 부르는 말이라 합니다. 그럼 액정서는 어떤 관청일까요? 액정서는 양반과 일반 백성 사이 중간계층이 근무하는 곳으로 왕명의 전달, 궁궐문의 자물쇠 관리, 궁에서 사용되는 붓과 벼루 관리 등 궁궐의 허드레 일을 주로 맡은 하급 관청입니다.
하지만 액례인 별감은 임금, 왕비, 동궁 등을 측근에서 모시는 사람들이고 그 중 무예별감처럼 호위 역할도 맡았기에 이들의 위세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돈이 되는 일에 관여하게 되는데 그 중 아주 중요한 일이 바로 관기 즉 기생의 관리입니다. 기생을 관리하다 보니 자연히 술집도 경영하게 되고 술집의 뒤를 봐주기도 하니 당시 유흥문화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인물들이 바로 별감입니다.
별감 옆에 두 선비는 별감과 아는 사이인 듯 한데 덥수룩한 수염에 호방한 얼굴이 술 꽤나 좋아하는 사람 같습니다. 별감이 마시면 자신들이 마시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별장이 젓가락을 들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인은 술을 따르고 있습니다. 술집 주인은 가채머리에 흰색 저고리, 푸른 치마를 입었는데 소매 끝동은 푸른색이고 깃과 고름은 자주색입니다. 이 당시 여성 복식 중 남색 끝동은 남편이 있는 경우고 자주색 고름은 자식이 있는 여자의 복식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주인은 남편과 자식이 있는 여자일 것입니다. 술을 뜨면서 술보다는 별장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혹 별장의 여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당시에 선술집에서 술을 주문하는 방식은 ‘한잔 주시요’ 하면 그 속에는 술 한잔 + 안주 하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두 잔은 술 두 잔에 안주 두 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술을 주문하면 주인을 술통에서 술을 떠 그릇에 담는데 이때 사용하는 국자 모양의 기구는 ‘구기’ 라는 하고 자루가 수직으로 달려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국자로 술을 떠서 바로 술잔에 담아주는 것이 아니라 술통 앞에 있는 그런 그릇에 먼저 담은 후 뜨거운 물에 담겨 술을 데워 먹습니다.
자 그렇다면 앞에 있는 가마솥에 용도를 알 수 있겠죠? 바로 술을 덥히기 위한 가마솥입니다. 이를 거냉(去冷)이라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술꾼들은 알 것입니다. 원래 술은 차갑던지 따뜻해야 먹을 만하지 어중간하면 술 맛이 나지 않는다 법이니 지금도 청주는 이렇게 따뜻하게 데워 마십니다.
왼쪽을 보니 술집 종업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서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술집에서 물건을 나르거나 아궁이에 불을 때는 ‘중노미’ 라고 불리는 인물로 술집에서 온갖 허드레 일을 담당합니다. 근데 이상한 점은 중노미가 뭔가 나르지도 불을 때지도 않는데 왜 거기 서서 술 마시는 손님을 쳐다보고 있을까요?
중노미는 허드레 일 말고도 아주 중요한 임무가 하나 있는데 손님이 술을 마실 때마다 안주를 놓아주면서 ‘몇 잔 안주요’ 라고 말하며 잔 수를 세어 줍니다. 주인은 술을 이놈 저놈 따라주기 때문에 누가 몇 잔 마셨는지 전부 다 기억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옆에 중노미가 잔 수를 세어주어 술 값 계산에 지장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중노미의 역할 중 하나 인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에 맞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한 잔 이라도 셈이 틀리지 않으려 유심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오른쪽 두 사람 중 갓을 쓴 양반은 점잔은 체면에도 불구하고 겉옷을 들추고 있는 폼 새가 아마도 술이 좀 얼큰하게 취한 것 같습니다. 담뱃대를 술을 향해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한잔 더 하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일행인듯한 사람이 또 무척 흥미로운 인물인데 복장이 아주 특이합니다. 망건도 아닌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고 겉옷은 소매가 없고 검은 천에 하얀 실로 새긴 넓은 체크무늬 옷을 입고 있습니다. 조선의 관헌의 복장 중 이런 복장을 한 사람은 딱 하나 바로 의금부 나장의 복장입니다. 모자는 깔때기를 거꾸로 세운 것 같다 하여 깔때기라 부르고 소매 없는 옷은 까치등거리 또는 더그레라 부릅니다.
나장이란 말이 좀 생소하신 분들은 아마 같은 뜻인 나졸이란 표현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나장은 죄인을 문초할 때 매질 및 호송 등을 맡았던 칠반천민 중 하나인데 의금부, 병조, 사헌부, 사간원, 전옥서 등에 배속되어 있고 보통은 주장이라는 막대기를 들고 다닙니다. 그 중에서도 끗발로 따지면 의금부 나장이 제일입니다. 제 아무리 왕족이나 권문세가 인물도 왕명에 따라 의금부에 끌려와 나장의 매질에 당할 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장은 별감과 더불어 주류업계를 주름잡은 쌍두마차였는데 그 이유는 별감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인지
인물 이외 부분은 그리 세밀하게 그리지 않고 쓱쓱 그려나갔는데 얼큰한 취기에 걸맞게 담 위로 분홍빛 꽃이 화사하게 그려냈습니다. 꽃 잎도 분위기에 맞게 정밀하게 그리지 않고 술 취한 듯 붓을 툭툭 찍듯이 물컹하게 그렸습니다.
인물을 하나씩 뜯어놓고 보니 좀 더 그날 그 술집의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주인과 중노미 등 술을 파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술을 마시려는 사람 등 조선시대 선술집의 얼큰한 풍경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도적 측면도 왼쪽에 두 명, 가운데 세 명 오른쪽에 두 명을 배치하여 안정감을 획득하였고 앞쪽에 지붕을 배치하여 마치 독자로 하여금 담장을 넘어 술집 풍경을 실제 바라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이처럼
그런 선술집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서서 갈비’ 같은 가게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이름만 서서갈비라 하고 실제 좌석이 준비된 가게도 있지만 신촌의 어느 ‘서서갈비’ 는 정말로 가게의 손님들 전부가 일어서서 갈비와 함께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현실의 모든 것은 전통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인해 중소 자영업 및 서민들이 삶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주 류 같은 주류판매가 많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하루의 고달픈 생활을 저녁의 쓴 소주로라도 풀지 못하면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하필 IMF 때도 그러더니 왜 경제위기는 꼭 겨울을 앞둔 시절에 본격화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뜩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위축되는 시기에 날씨까지 추워지니 상대적으로 더욱 힘겨운 서민들은 주당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주 생각 간절해지는 건 당연 할 것입니다.
어제가 입동(立冬)이라 합니다. 절기상으로는 이제 겨울로 접어든 셈입니다. 기온은 떨어질 것이고 눈보라도 조만간 찾아 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춥고 고달파도 참고 버티면 어느 순간에 봄은 슬며시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대문 앞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적어 붙여 놓을 것입니다.
새 봄이 오는 그때까지, 서민들이 좀 더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그날까지 가족끼리, 직장 동료들끼리 한 잔의 소주에 삶의 고단함을 잠시 접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원조 선술집 풍경 신윤복의 [주사거배] 였습니다.
* 글 내용 중 옛 술집, 복식에 관한 부분은 한문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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