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경주

경주 쌍상총

박근닷컴 2012. 12. 24. 23:20

 

 

쌍상총 [雙床塚](두쌍/쌍쌍,평상상,무덤총)

사적 제39호로 지정된 노서동고분군(路西洞古墳群) 가운데 하나로 경주지역 고분의 일련번호는 노서동 137호분이다. 경주시내 평지에 축조된 신라시대의 고분들이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인 것과 달리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의 형태이다. 1953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발굴 당시 고분 주위에는 민가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봉토의 1/3 가량은 이미 깎여 나갔으며 내부는 도굴당한 상태였다. 남아 있는 봉토의 높이는 5m, 지름은 17m였다. 매장시설은 평지에 터를 닦고 평면구조가 네모인 널방[玄室]에 널길[羨道]을 연결한 형태로 쌓았다. 널방은 대충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남북길이 3m, 동서너비 3.3m이다. 바닥에서 2m 가량은 수직으로 쌓았고 그 위는 안으로 모죽임하여 삼각형의 큰 판석 1매를 덮어 천장으로 했다. 바닥에서 천장석까지의 길이는 4m이다. 널길은 너비 1.35m, 높이 1.5m, 길이 4m이며 널방 남쪽벽의 가운데에서 정남쪽으로 뚫려 있다. 널길천장은 너비 1~1.6m의 판석 3매로 덮었다. 널길의 바깥쪽은 자연석으로 막혀 있었으며, 널길과 널방 사이에는 높이 133㎝, 너비 55㎝, 두께 10㎝의 돌문[石扉] 1짝이 있다. 돌문은 도깨비문양의 좌금구(座金具)를 갖춘 청동제 문고리와 빗장으로 밖에서 잠겨 있었다. 널방 가운데에는 자연석과 전석(塼石)으로 2차례에 걸쳐 만든 주검받침[屍床]이 있다. 길이 230㎝, 너비 150㎝인 북쪽의 주검받침을 먼저 만들어 시신을 안장한 후, 다시 돌문을 열고 그 남쪽에 70㎝ 가량 주검받침을 연장하여 1구의 시신을 더 안장했다. 무덤이름은 2개의 주검받침이 있는 데서 연유해 쌍상총이라 했다. 북쪽 주검받침에는 시신의 형태를 새긴 6매의 응회석(凝灰石)을 깔았고 남쪽 주검받침에는 머리받침과 발받침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주검받침의 형태로 보아 시신은 널[棺]을 사용하지 않고 의복을 입힌 채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안장된 것으로 보인다. 널방과 널길 전면에는 두께 3㎝의 회를 발랐다. 출토유물은 도굴로 인해 토기파편 일부와 청동제 문고리 1쌍, 청동제 빗장 1개가 남아 있었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편들이 경주지역 고분 가운데 삼국시대 말기와 통일신라 초기에 축조된 충효동고분군 출토토기와 유사하고, 청동제 문고리의 도깨비문양이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전(塼)과 기와에 보이는 문양과 유사함을 볼 때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자료.백과사전]

'▶답사 경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원원사지  (0) 2013.01.08
경주 분황사  (0) 2013.01.08
늦가을 괘릉  (0) 2012.11.22
경주 월성 해자복원지  (0) 2012.10.27
경주 전통명주전시관  (0) 201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