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유적답사

석장사지 가는길 [2014.02.24]

박근닷컴 2014. 3. 4. 15:15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 때인 7세기 무렵에 신묘한 술법과 그림 및 조각의 기예로 이름난 양지(良志)라는 스님이 석장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6년과 1992년에 2차에 걸친 유적발굴조사조사(동국대경주박물관)결과 양지가 주석(主錫)할 당시의 유구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의 유구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또「석장(錫杖)」묵서명의 조선시대 자기 굽바닥을 발견하여 이 곳이 석장사지임을 확인했고, 불탑과 불상을 새긴 통일신라시대의「연기법(緣起法頌)」명의 탑상문전편(塔像紋塼片)을 발견했다.

 

 

 

 

 

 

 

 

 

 

 

 

 

 

 

 

 

 

 

 

 

 

 

 

 

 

 

 

 

 

 

 

 

 

 

 

 

 

 

 

 

 

 

 

 

 

 

 

 

석장사지 -양지스님 이야기-

석장사지는 경주시 석장동 산81-2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옥녀봉 줄기인 해발 95m 의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이 곳 지명은 석장동이며 주민들은 이 곳을 절터골이라 부 르고 있다. 석장사지까지는 마을에서 서당골(최씨문중제실이 있는 골짜기)를 따라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에서 가다 보면 조그마한 약수터가 있고 바로 위에 석장사가 있다. 이곳은 옛날 선덕여왕 때 양지(良志)스님이 계시던 석장사 터이다. 양지스님은 불법만 영 통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예에 있어서도 능통하신 분이었다. 특히 조각 솜씨가 뛰어나 서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상(天王像)을 만들었고 법당과 목탑의 기 와 무늬도 새겼다. 또 천왕사의 목탑 밑에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법림사(法林寺)의 삼존불 (三尊佛)과 좌우 금강역사(金剛力士)도 조성하였다. 또 그는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을 썼으 며, 일찍이 벽돌을 조각하여 탑을 만들고 아울러 삼천불을 만들어 절 안에 안치하였다는 기 록으로 보아 그는 당시의 훌륭한 예술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을 조성하고 탑을 쌓는 일이 바빠서 탁발을 나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 서 스님이 짚고 다니던 석장(錫杖, 중의 지팡이)의 끝머리에 포대를 매어서 밖으로 던지면 그 석장이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지스님의 지 팡이가 왔다고 쌀이나 돈을 포대에 넣어 주었다. 포대가 차면 석장은 혼자서 스님에게로 돌 아왔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스님의 절을 석장사라 부르게 되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에서는 1986년과 1992년 2차에 걸쳐 이 곳을 발굴 조사하 여 석장사의 사역과 규모, 사명, 그리고 출토된 유물과 양지 스님과의 관계를 규명해 보았 다.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유물들 특히 소조신장상편(塑造神將像片)들이나 탑상문전(塔像紋塡), 조선시대 도자기 급받침 밑의 '석장'이라는 묵서명(墨書銘)에 의하여 문헌기록과 구전으 로 전해오는
석장사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재 석장사는 산지가람(山地伽藍)으로서 자그마한 암자 규모로 예술가 특히 조각가로 유명한 양지스님이 이 곳에 머물 면서 흙으로 빚어서 신장상이나 탑상문전 같은 것을 만들었기에 유명한 사찰인 것이다. 따 라서 석장사는 양지스님이 활약하던 선덕여왕 때 창건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말까지 사 맥(寺脈)이 이어 온 것으로 출토된 유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지는 폐허되어 초목만 무성하다 (자료: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