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신라 얼음창고 빙고 추정 유적 첫 발견
겨레문화유산연구원, 대형 저장용 구덩이 유구 분석
“형산강 얼음을 물길을 이용해 경주로 운반했을 것”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깊이 1.5m가량의 빙고 추정 터. 동그란 선으로 표시된 네개의 기둥자리 흔적이 얼음을 얹었던 선반을 설치한 곳으로 추정된다. 안쪽 구멍 뚫린 곳은 배수로 시설로 얼음 녹은 물을 빼내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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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이 겨울에 강얼음을 깨어 사철 내내 보관한 빙고(氷庫)로 보이는 유적이 경주 근방에서 발견됐다.
발굴 기관인 겨레문화유산연구원(원장 신창수)이 최근 동해남부선 새 철로 예정터인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농지에서 깊이 1.5m, 가로·세로 길이 4~5m가량의 대형 저장용 구덩이 유구를 찾아내 분석한 결과다. 연구원쪽은 이 구덩이가 그동안 보고된 바 없는 7~8세기 통일신라시대 빙고 터로 유력하다고 밝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빙고 추정 유적은 북쪽의 경주와 포항으로 흘러가는 형산강 강가에서 15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다른 집자리 등에 비해 땅을 깊이 팠고, 밑바닥에 돌을 정교하게 짜맞춰 물길을 틔운 배수시설을 놓았으며, 창고의 구조물로 보이는 네개의 기둥 하부구조(적심)의 흔적도 발견됐다. 일반적인 집자리나 창고 터와는 다른 이 독특한 얼개는 고대 빙고의 전형적 특징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최병현 숭실대 교수 등 고고학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곡리 빙고 추정 터의 기둥자리 적심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조각. 통일신라 기와의 전형적인 특징인 연꽃무늬 막새다. 사진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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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수 원장은 “저장물의 온도를 서늘하게 유지하기 위해 땅을 깊이 판 것이나, 얼음 녹은 물을 빼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구 시설, 자른 얼음을 포갠 선반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둥 흔적 등이 빙고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단서들”이라며 “겨울철 가까운 형산강의 얼음을 활용하고 강의 물길이나 주변 대로를 이용해 도읍 경주로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노곡리 빙고 추정터 근처에서는 신라 때의 대형 도로터가 확인되기도 했다.
신라 도읍 경주에서 신라인들이 썼다고 확실하게 입증되는 빙고 관련 유적은 이제껏 보고된 바가 없다. 세간에 잘 알려진 경주 월성 안의 석빙고는 신라 때 것이 아니라 조선 영조 14년인 1738년 당시 경주 부윤 조명겸(趙明謙)이 돌로 쌓은 것이다. 사실 역사 기록을 보면, 빙고는 신라와 인연이 깊어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국가 시설로 등장한다. 505년 지증왕 6년에 왕명으로 얼음을 모아 저장하게 한 이래 나라에서 쓰는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가 운영됐으며, 이를 관장하던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서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국내 학계에는 이보다 앞서 고대 빙고터 추정 유적들이 강릉 안현동과 경기도 화성, 경북 상주, 경남 진주 등 몇군데에서 보고된 사례들이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혹은 이전 원삼국시대로 짐작하지만, 빙고터의 세부적인 얼개나 삼국 중 어느나라 사람들이 썼는지 등을 심층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학계 외부에 알려진 적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2011년에는 충남 연기군 복합행정도시 예정터의 금강 기슭 대지에서 백제의 빙고로 추정되는 구덩이가 무덤터와 함께 나와 언론의 관심을 모았지만, 곧 복토돼 후속 연구가 진전되지는 못했다.
학계에서는 고대 빙고에 얼음을 보관한 것이 여름철 더위를 쫓는 등 생활상의 편의를 위한 것 외에도 실력자의 주검을 무덤에 장사를 지내기 전에 썩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한 기능도 있었다고 본다. 고대 빙고 관련 유적들 가운데 일부는 고분 주변에서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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