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교수의 영월을 꿈꾼 천년왕국 신라]<1>금관총 왜 다시 발굴하나
고고학자도 없이 나흘만에 뚝딱… 일제의 마구잡이 발굴 깊은 상처
《 신라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신라인의 삶과 죽음을 각각 상징하는 월성(月城)과 금관총(金冠塚)의 본격적인 발굴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천년 왕국 신라의 숨결이 서서히 우리 앞에서 되살아난다. 고고학자로 신라, 백제 고분의 금속 부장품 전문가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장신구를 통해 당시의 사회, 정치적 변화를 연구해 왔다. 주 1회 신라의 문화유산에 얽힌 사연을 전한다. 》
1927년 11월 10일 야심한 밤. 경주박물관 뒤뜰에서 누군가 어둠을 헤치며 살금살금 금관고(金冠庫)로 다가섰다. 문고리는 열려 있었고 괴한은 미리 리허설이라도 한 듯 아무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순식간에 창고로 들어갔다. 좁은 창문 틈을 타고 들어온 달빛에 금관의 멋진 실루엣이 드러났다. 도둑은 순금 허리띠와 유리 목걸이가 보관된 진열장 문을 열고 유물들을 쓸어 담았다. 당초 목표로 삼은 금관까지 손을 대려고 했지만 전시장 문이 열리지 않아 포기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유물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난 1928년 5월 범인은 경주경찰서장 관사 앞에 유물이 담긴 보자기를 슬며시 내려놓고 사라졌다. 수사망이 좁혀 오자 다급해진 듯했다. 보자기에는 순금 허리띠(국보 88호)를 비롯한 도난 유물이 대부분 들어 있었지만 허리띠에 매달린 길쭉한 드리개 하나는 사라졌다. 당시 경주박물관장으로 금관총 발굴 당시 일부 유물을 빼돌렸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됐다.
금관총의 수난사는 발굴 직후부터 시작됐다. 1921년 9월 24일 경주경찰서 순사 미야케는 마을 순찰에 나섰다가 흙더미 주변에서 아이들이 영롱한 푸른색 유리구슬을 갖고 노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 수소문 끝에 구슬이 담긴 흙더미가 봉황대 서쪽 음식점 부근에서 나온 사실을 알아내고 현장에 들이닥쳤다. 각종 유물이 막 출토되려는 상황에서 공사는 즉각 중단됐다.
조선총독부는 발굴단을 꾸렸지만 고고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요 유물을 수습하는 수준에서 4일 만에 발굴을 해치웠다. 이들은 유물을 일단 경주경찰서로 옮겼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이 무렵 금관총 일부 유물이 일본으로 밀반출돼 현재 도쿄박물관 등 여러 곳에 보관돼 있다. 제국주의 총칼은 조선의 백성뿐만 아니라 문화재에도 깊은 상처를 낸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금관총 유물을 볼 때마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발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일제강점기 발굴 이후 82년이 지난 2013년 학계와 시민들의 눈과 귀가 다시 금관총에 쏠렸다. 그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 유물을 정리하던 중 ‘둥근 고리 큰칼(環頭大刀·환두대도)’에서 ‘이사지왕(이斯智王)’이라고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이사지왕이라 불린 사람이 신라의 왕인지, 그렇다면 그가 금관총의 주인공인지 등의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논의가 이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금관총 발굴이 미완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달 초부터 우리 손으로 금관총 발굴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아마도 봄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무덤의 윤곽을 찾아 땅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유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금관총도 온전한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혹 조사가 끝나면 금관총을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처럼 거대하게 복원하자는 의견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봉분을 크게 만들고 외관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복원을 최소화해 금관총이 간직한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연구와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은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후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 이한상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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