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운흥사는…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 창건…
목판 새기고 종이 만든 기술도
운흥사터는 울산광역시 울주구 웅촌면 고연리 반계마을 뒤편에 있다. 울주의 간월사터에서 통도사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웅천. 삼동 방면의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으로 좌회전하여 20분 남짓이면 웅촌에 닿는다. 웅촌에서는 춘해대학을 찾으면 된다. 그 정문 앞을 지나 시적사 팻말이 나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면 운흥동천(雲興洞天)이다. 울산 시내에서는 부산으로 향하는 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웅촌에서 같은 방법으로 가면 된다.
절터로 가기 위해서 오르는 계곡인 운흥동천은 해인사의 홍류동천(紅流洞天)과 함께 경남지방에서는 손꼽히는 풍치를 자랑한다. 홍류동천은 발조차 담그지 못하지만 이곳 운흥동천은 마음껏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한적한 곳이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의 끝닿은 곳이 운흥사 옛터이며 자동차는 그곳에 세워야 한다. 앞에 흐르는 계류를 따라 올라가면 금당자리이며, 계류를 건너 산길로 5분 남짓이면 부도골에 닿을 수 있다.
운흥사터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을 해 2003년에 보고서를 냈다. 그에 따르면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하였으며 그에 따른 암자가 13곳, 스님이 1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말에 지공(指空)선사가 중창했으나 임진왜란에 불탔다. 다시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대휘(大希)선사가 중창하였으며 1864년에 간행된 〈대동지지〉에도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무슨 연유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른 절터와는 달리 수습된 유구들에게서 석탑이나 석불 그리고 철불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작은 불상편들은 발견 되었지만 여느 다른 절집에 모신 정도의 불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다른 곳보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석조가 많아 넷이나 된다. 또 한지를 만들 때 닥을 잘게 부술 때 사용하던 ‘딱돌’ 그리고 16종에 달하는 목판이 673장이나 남아 있으며 절 앞으로는 닥을 불릴 수 있는 맑은 계류가 흘렀다. 이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일이다. 산골의 사찰에서 목판을 새기고 또 그것을 찍을 수 있는 종이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이 절의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불법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 폐문하고 선정에 들어 불법을 닦는 절집과는 달리 봐야 할 것이다.
목판은 지금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절터에는 부도와 석조 그리고 딱돌이나 석등과 같은 석물들이 흩어져 있다. 시적사에도 이곳에서 나온 부도 2기가 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화려한 것이 없을 지언 정,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조차 보려고 애쓰는 것이 절터 답사의 백미라면 운흥사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곳이다.
| 부도의 기단석...? (추정) |
경판을 보관했던 전각의 주춫돌
기둥 흔적을 볼때 전각은 화재로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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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장경각 목판으로 1679년에 간행된 금강경 오가해 이 경전을 근거로 강원의 교재로 계승 운흥사에 오동나무 상자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경전입니다. 야은스님으로 부터 경전과 설명을 들었는데, 전달이 부족하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금강경 오가해 (上, 下)127 板 강희 18년 기미년(1679)12月 刊 숙종 5년에 강행된 것으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도 하며, 석존이 사위국에서 수보리 등을 위하여 처음에 경계가 공함을 말하고 다음에 혜가 공함을 보이고, 뒤에 보살공을 밝힌경은 공혜로써 체를 삼고 일체법 무아의 이치를 말한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운흥사지에 답사가시면 운흥사지를 지키고 계시는 운흥사의 야은 스님께 들리셔서 설명을 청하시면 도움이 되실겝니다. 운흥사 052-260-2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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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여름에 답사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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