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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삼족오의 꽃 '연오·세오'

박근닷컴 2010. 7. 17. 21:30
신라 삼족오의 꽃 '연오·세오'
기사입력 | 2010-07-16
안수경(포항문화원 사무국장)

가끔 답사를 진행하다 보면 까마귀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심 영물, 오늘은 정말 재수 좋겠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 칠흑과 같은 검은 빛의 영물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칠흑과 같은 검은 빛은 찬란한 태양을 몸 속에 품은 태양의 상징이기에… 극과 극은 통한다 했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마귀는 신성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태양신 아폴론의 신조가 까마귀이며 왕관을 의미하는 CROWN의 어원은 CROW 까마귀에서 유래했다. 땅의 지배자이자 왕의 상징물 그것은 까마귀였다.

동양에서는 특히 동이족의 문화 원류로 보는 은(殷) 문화 반경에 예와 항아의 신화와 더불어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 사상의 출발이 나타난다. 동방 천제 제준(帝俊)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10명의 아들이 있었고 이들은 10개의 태양으로 밤에는 세발 달린 신성한 까마귀 곧 삼족오로 동방 양곡(陽谷)에 살았다. 매일 순서대로 태양이 되며 그들의 주기는 열흘(旬)이었는데 어느날 반복된 일상에 지겨워진 10명의 아들들은 작당하여 반란을 일으켜 동시에 태양으로 떠올랐다. 세상은 아수라장 !

천제 제준은 동방 명사수 예를 불러 붉은 활과 흰 화살을 특별히 하사해 진압의 전권을 줬다. 예는 10개의 태양을 향해 한발 한발씩 쏘아 나갔다. 명중된 활을 맞은 태양은 한마리씩 삼족오로 바뀌어 땅에 떨어졌다. 아차! 예는 9발의 활을 정신없이 적중시키고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천제의 아들들인데… 너무 반성의 틈없이 마지막 태양 하나만 남긴 것이었다. 천제에 대한 죄책감을 간직한 하늘의 용사 예는 한 마리의 삼족오만 남긴 결과를 천제에게 보고했다. 그 반응은 냉담했고 결과는 하늘세계에서의 축출이었다. 그 후 아름다운 아내 항아와의 불화로 항아는 달에게로 도망가 월중 토끼나 두꺼비가 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생명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태양이었고 신앙의 출발 역시 태양에서 시작된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간은 태양의 무한한 가능성과 영향에 감탄한다. 친환경 무한의 에너지 이것이 태양 신화이다.

고대의 인간에게도 인지상정 이었을까? 그 전능한 능력에 감사하며 인간에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형상화한 영물 그것이 일중삼족오(日中三足烏)이다. 태양의 상징 삼족오는 우리민족에게도 중심 신앙이자 사상이었다. 현재 삼족오가 가장 아름답게 남겨진 문화재는 고구려의 벽화와 부장품 관모이다. 그 외에도 백제 부장품 가야토기 신라기와 고려기와와 불화 조선시대의 묘비, 불구, 민화 등에서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고려시대 이후로 약화되는 경향은 있으나 면면히 한민족의 정서와 사상에 녹아있는 세계보편사상이다.

그런데 이런 일중삼족오사상이 문헌으로 표현된 유일한 자취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연오랑 세오녀조이다. 일중삼족오 신앙의 신라문화의 대표적 예인연오와 세오는 浦項市民들에게는 어느 정도 정립되고 있는 포항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삼족오가 너무 알려져 흔해서 일까?

우리는 한민족 대표적인 사상을, 유일한 문헌을 등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해맞이축전의 고장 포항은 아직도 해의 지명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자부심은 가지지만 해의 상징 삼족오로의 결부에는 왜 이리 인색한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감히 단언하고 싶다. 한반도의 지명에 태양의 정기가 가장 서려 있는 양곡(陽谷)은 포항이고 그 양곡에 삼족오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안수경(포항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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