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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안강사람' 노당기와 장인

박근닷컴 2010. 7. 24. 23:20

 

기와굽기 3대 정문길씨, 장인정신 일념 기와굽기 가업 3대째 계승

83년 문화재 기능보유자 와공1호로 지정된 정문길씨

3대에 걸친 장인정신으로 전 통방법으로 기와를 제작하고 있다.

(주)노당에서는 생산하는 것은 전통기와 외에 전돌· 용두· 잡상· 절병통 등. 노당은 40년 조부 인 정유제 옹이 설립하고 51년 부친인 석동씨가 가업을 계승했다. 이후 67년부터 문길씨가 잇고 있는 것.

노당기와는 점토채취, 혼련, 성형등 전통기법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 문화재보수나 사찰, 한옥건축 등에 쓰이고 있다.

정씨는 현재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물려받은 가업인 만큼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이형우기자〉

 

 

가마 내부사진

 

한국문화재기능보유자 등록 670호에 제작와공 1호

 

경주 노당기와 정문길(鄭文吉) 대표

 

 

 

44년 외길로 기와 만들기에 전념해 온 결과 27년 전 이미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우리나라 기와 만들기 기능보유자 등록을 마친 경주 노당기와 정문길 대표(68)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우리나라 기와 제작의 장인 1호다.

 

해방 전 조부 때부터 기와 만들기가 가업이던 정 대표는 부친에 이어 3대째 기와 제작을 전업으로 하면서 60여년간의 긴 세월동안 익힌 기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높은 전통기와를 생산해 전국곳곳의 사찰과 고 건축물 신축현장은 물론 보수공사장에다 납품하고 있는 국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통기와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안강읍 노당리 487-1 현재의 회사 터가 바로 출생지인 정 대표는 안강북부초등과 안강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가업이던 기와제작에 매달려 44년 동안을 한길로 온 탓에 한국 전통기와로는 가장 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당기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기와 장인이다.

 

1940년 조부인 정유제 옹이 이 터에서 기와공장을 처음 설립했으며 1951년부터 부친인 정석동 옹이 가업을 이어 오던 중 1967년부터 정 대표가 3대째 가업을 승계 받아 오늘에 이른 <주>노당기와는 현재 한 달에 15만장의 기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전국 곳곳에서 의뢰해 오는 소비처로부터 주문생산을 받고 있다.

 

정 대표가 운영하는 노당기와는 가업 승계 13년째인 1979년에 이미 당시 문화재관리국에 등록을 마쳤으며 5년 뒤인 1983년에는 문화재기능보유자 등록 670호를 받은 뒤 10년 뒤인 1993년엔 그을림 한식기와로 KSF 3510 인정을 취득, 전통한국기와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해 전통기와 생산 공장으로 전국의 유명사찰에 기와공급을 시작했다.

 

특히 노당기와는 전국 방방곡곡의 다른 기와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보다 품질이 크게 앞선다. 그 이유로는 기와제작의 필수조건에다 바탕이 되는 태토(흙)가 이곳 공장인근의 노당리 일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주시 안강읍 노당리 일대는 광맥지도상 기계지적 19호 고령토 광구로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고령토가 생산되기 때문에 기와도 우수하다. 그는 좋은 고령토 흙에다 수십 년의 연륜을 가진 정 대표의 높은 기술력이 합쳐져 생산되니 훌륭한 기와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평소에도 매사 일처리에서 통이 큰 인물로 불리며 주위에 베푸는 인심도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 정 대표가 지난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의 고생담을 얘기할 때는 설명이 제법 길어진다.

태토의 반죽에서부터 암키와, 수키와의 외형인 모양을 만드는 성형을 비롯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다 만들어진 기와를 가마에 넣어서 굽는 과정이라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좋은 흙으로 만든 기와라도 가마 속 불의 온도를 어떻게 맞추는 가에 따라 정성들여 성형시킨 제품이 잘 생산돼 나오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불의 온도 조절 기술이 가능해서다.

당초엔 불의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잘 깨어지고 오래두면 물의 흡수율이 높아져 쓰며들기도 해 낭패를 보기가 예사였으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기술을 터득했으며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오늘의 결과를 얻게 됐다고 정 대표는 과거 어려움을 회고했다.

 

노당기와에서 만들어 내는 전통기와는 종류도 다양하다. 크게 분류하면 암키와와 수키와지만 여기다 암막새와 수막새, 그리고 착고와 망와, 치미는 물론 용두와 잡상, 절병통까지 한식골기와 건물의 지붕을 완전하게 마무리 짓도록 하는 일체의 기와가 일괄 세트로 납품돼야 하는 탓에 종류가 많으며 주문처의 의뢰에 따라 다양한 주문생산도 된다.

거기다 건물의 규모에 따라 기와의 크기와 규격도 정해지기 때문에 암키와와 수키와를 각각 소·중·대로 나누고 또 A와 B로도 나눠지며 너비와 두께, 앞면·길이·단부가 각각 달라 제작자체도 무척이나 까다롭다.

 

정 대표는 자신이 생산해내는 노당기와의 장점은 “전국에서 가장 좋은 태토인 기계 고령토에다 1150도 이상의 고온으로 소성시켰기 때문에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동파가 없으며 강도가 750kg 이상에다 흡수율도 2% 이하인데다 은색에다 검정색의 100% 옹기기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전국에서 가장 질이 좋다는 고령토를 태토로 사용하면서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기술을 융합시켜 만들어지는 질 높은 기와이기에 그 명성도 전국에 널리 알려져서 경주 안강의 노당기와는 전국의 중요한 사찰을 비롯해 전통한옥을 신축하는 곳에서는 대부분 주문을 의뢰해 온다.

 

노당기와가 납품된 중요 사찰을 열거하자면 가히 전국적이다.

경주 불국사를 비롯해 기림사와 최근에 완공된 동리·목월 기념관 등 경주지역은 물론 개운사와 봉운사, 연화사, 월정사, 백담사, 화암사, 내장사, 백양사, 금산사, 옥천사 등 전국 곳곳의 중요 대찰과 창덕궁의 보수공사 현장에도 노당기와가 공급돼 정 대표가 생산한 전통기와의 명성은 기와 장인의 이름 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셈이다.

전국에서 명성을 얻은 노당기와는 개성공단의 일주문에도 사용하는 등 몇 년 전부터는 한식 건축물이 지어지는 곳엔 어디든 찾아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까지도 수출되고 있는 노당기와의 우수성은 국내 뿐 만아니라 국외에서도 이름이 높아 건축자재의 일종인 우리의 전통기와가 한국의 국위선양에도 기여하고 있다.

 

근면 성실한 데다 부지런하기도 한 정 대표는 평소 바쁜 데도 시간을 쪼개 봉사단체와 사회단체에서도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1985년부터 안강의용소방대 육통·노당지구대장과 안강중·고등학교 육성회장, 북부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은 물론 1992년부터 안강라이온스클럽 회장을 하면서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도 수료했다.

같은 해 라이온스클럽 경주 5지역 지대위원장을, 1993년부터 4년 동안에는 한국자유총연맹 경주시·군 지부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2004년부터 경주경찰서 안강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장을, 2008년부터는 경주경찰서 생활안전협의회 연합회장직을, 최근에는 북안강발전연구회장직도 맡아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문화재청장과 경찰청장, 문화공보부장관 등의 표창을 받은 정 대표는 영일 정씨들의 문중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영일 정씨 대종회 부회장에다 경주지역 화수회장도 맡고 있는 정 대표는 “남은 인생도 베푸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각오”라고 덧붙였다.

연락처:(054)763-3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