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로 들어서는 길목을 빙 둘러 100세는 족히 될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자리해
먼저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 한다.
포항시 기계면 현내리의 도원정사(桃源精舍)
경주 이씨 기계문중에서 관리하는 이 정자는 조선 성종대에 사마시에 합 격한 뒤 성균관에서 수학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보고 낙향한 이말동(李末仝. 1443-1519) 선생이 1496년에 터를 잡은 곳이다. 이보다 앞서 그의 아버지 (이윤흥)도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뒤에 정의공신에 추존된 인물로 이같은 성정은 대물림된 모양이다.
낙향한 그는 풍수해를 막기 위해 마을 주위에 대규모 솔 숲을 조성하는 한편 이 정자에서 후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호를 도원(桃源)이라 짓고 정 자 이름으로 삼았다.
이 이름은 중국의 대시인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에서 비롯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과 동떨어진 이상향' 을 일컫는다. 세상과 결별하다시피 산 속에 은거하려는 그의 뜻이 이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독락당(계정),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용 계정 등
이 일대 정자 대부분이 주변 경관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누하주를 설치하고 계곡에 걸쳐 건물을 짓는 독특한 형식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이 정자는 그저 두봉산 남쪽 산자락에 숨은 듯 위치해 있을 뿐이다.
지금의 정자는 당초 건물이 크게 퇴락하자 70여년 전에 문중에서 다시 중건한 것이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3칸 솟을대문을 설치했으나 당초의 형식은 아닐 것이다. 은거하기 위해 세운 정자의 대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솟을대문을 따라 둘러쳐진 높이 1m 남짓의 흙돌담은 너무나 정겹다. 양 옆 이 틔어져 있어 돌아 들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는 높이다.
담장의 높이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인품을 느낀다면 지나친 것일까. 담장을 그저 마음의 경계로만 여기고 살아 왔던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씨를 이곳에서 되찾아 본다.
문을 들어서면 30평 남짓한 큰 연못이 정자를 가로막고 있다. 다리를 건 너 정자에 이른다. 마름이 무성하게 자란 연못에 수십년 된 백일홍 꽃그늘 이 어려 정취가 절로 넘친다. 당초의 나무다리를 10여년전 푸른색 철난간 을 두른 시멘트다리로 바꿔 흥취를 많이 잃어 버린 것이 아쉽다.
늦은 밤, 다리를 건너던 선생은 '은거시'라는 제목으로 이같이 노래 불 렀다한다.
"저 달 주위엔 천년의 옛빛이 어리고(月留千古色) / 이 바위는 백년 먹 은 칡덩굴을 감고 늙었에라(巖老白年藤) // 깊숙한 이 골짜기는 너무나 그 윽해(洞裏幽閑足) / 절로 무릉도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듯 하구나(無心 艶武陵)."
나무다리를 신비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으로 들어서는 비밀의 통로로 여기 며 흥겨웠을 선생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이 다리 통로는 건물의 정면에서 약간 비켜나 있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 면 묘리 삼가헌(중요민속자료 제104호)의 별채 하엽정
영양군 입암면 연 당리 서석지(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의 경정 등
정자 형태로 지은 고건축물 대부분이 출입구를 한쪽 옆에 두고 비켜 앉아 있다.
대숲과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정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웅장한 모습 이다. 굵직굵직한 기둥과 들보는 물론 전체 구조가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만취당(중요민속자료 제175호)의 큰사랑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위용당당한다.그러나 6.25전쟁때 최대 격전지였던 만큼 기둥과 들보 곳곳에는 총탄자 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선생의 16대손인 이상걸씨(62)는 "500여년 동안 의 세거지였던 이곳에 고건축물이 즐비했으나 전쟁에 대부분 불타 버렸다" 며 "도원정사는 다행히 지붕 부분만 파괴됐다"고 말했다.
동쪽과 서쪽에 각각 1칸반 크기의 방을 내고 7칸의 널찍한 대청을 갖췄다.
동쪽 방은 삼외재(三畏齋), 서쪽 방은 산택헌(山澤軒)이라 이름 붙였 다.
문중에서 자주 이 정자에 모여 행사를 갖는 덕택에 오랜 세월에도 건물 은 여전히 윤택이 난다. 건물은 사람이 살아야 훈기가 넘쳐나게 마련. 급 격히 퇴락하고 있는 목조건축물의 보존을 위한 해법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동쪽에는 정자 살림을 돕기도 하며 손님을 따라 온 하인들이 잠시 거처하던 안락와(安樂窩)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의 대청 앞 에 오르기 쉽도록 대청을 물리고 별도로 턱을 낮춰 설치한 나지막한 마루 가 눈길을 끈다. 건축주의 재치와 배려가 돋보이는 특이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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