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쥐
소
범
토끼
용
뱀
안상은 중국의 고대 불사리의 장엄을 떠올리도록 한다.
십이지상과 안상등을 통해, 무덤조성에는 불교적 의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구정동방형분
1) 신라무덤 가운데 방형은 특별한 무덤으로 방형의 무덤은 주로 고구려 또는 중국식 무덤으로 구정동 방형분도 고구려인 또는 중국인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음.
2) 무덤의 구조설명 : 돌방무덤의 형태를 설명하면 된다.
(1) 입구 : 돌방무덤은 주로 입구가 남쪽으로 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는 12지 중 말이 세워져 있음, 신문왕릉의 경우에는 門이라는 글짜가 있음 등
(2) 복도와 방으로 들어가는 부분에 두짝의 돌문이 있음. 힘을 주면 움직임.
(3) 무덤의 내부에는 시상대, 벽면에 회칠을 하고 붉은색 물감(안료)가 칠해져 있음. 조금 남아 있음, 벽면을 잘 살펴야 찾을 수 있습니다.
(4) 도굴을 당한 흔적 : 내부에 들어가면 돌방의 북쪽 천장 모퉁이에 돌이 조금 밀려나간 흔적이 있음, 이곳을 통해 도굴이 이루어 짐.
(5)12지에 대해서 설명
남-말, 북-쥐, 동-토끼, 서-닭
(6) 12지 관찰 방법
- 복장의 종류 : 갑옷과 평복
- 무기의 종류 : 칼, 창 등 다양함.
- 머리의 방향 : 왼쪽, 오른쪽, 한 상을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는 상 등 다양함
7) 방형분의 모퉁이돌(우주석)로 서역인의 얼굴에 폴로채(격구)를 들고 있어 폴로를 즐긴 흔적이 있음.
------------- 방형분 참고 자료 --------------------------
방형분 발굴과 복원 사적27호이며 이미 도굴을 당한 뒤인 1920년 일본인들이 행한 학술조사에서 내부구조가 밝혀졌고, 이때 금동관 장신구, 은제띠고리, 은제행엽 등이 출토되었다. 그 후 방치되어 갑석, 면석, 호석, 지대석 등이 도괴되고 유실되었으며, 봉토층 또한 낙토가 심하여 정상 중심부에 있는 천장석이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강우기에는 누수가 심한 편이었다.
1964년 복원시에는 남편의 지대석은 전부 없어졌고, 동, 서, 북쪽 일부만이 지표위에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호석인 십이지상은 전부 남아 있었다. 그 중 양의 모습을 한 상만이 얼굴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당시 작업 감독기관은 경주시 교육청이었으며, 복원 감독은 정명종씨였다. 실제 복원작업은 1965년 8울20일부터 9월5일까지 15일이 소요되었다.
당시 북쪽부분의 지대석 및 면석, 갑석이 대체로 양호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북쪽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서편, 동편쪽으로 작업은 진행되었고, 남쪽은 맨 나중에 복원되었다. 또한 당시 8월30일 방문한 황수영씨와 의논 후 남쪽의 석실 입구를 종전과 같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복원작업에 필요하여 새로 마련한 석재의 수요는 다음과 같다. 면석44, 우주석4, 갑석24, 남편 지대석6 등 모두 78개였다. 즉 현재의 모습은 1965년 복원공사 이후의 것이다. 또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중 구정동 방형분에서 옮겨온 우주석이 있다.
방형분 우주석은 무인상과 석사자가 정교하게 새겨진 것으로 박물관에 옮겨져 온 시기는 1977년 3월31일이다. 발견 경위는 방형분 정화공사도중 발견되어 옮겨온 것이며, 무인상과 석사자가 부조로 조각된 것은 이 석주가 처음으로 신라시대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유물은 석실안으로 들어가는 연도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괘릉과 흥덕왕릉 등에서 볼 수 있는 환조의 무인상과 사자상이 이 우주석에는 양면이 나누어 얕은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즉 서역인상의 의복은 윗저고리에 옷깃을 좌측 한 쪽에만 붙인 절금을 한 것이라든지 가죽장화가 노출된 카트탄식 의복을 입은 것 등은 당나라 호인 조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괘릉과 흥덕왕릉의 고분 외형양식과 기본적인 점은 같지만 퇴화된 양식이며, 제작시기는 9~10세기로보여진다.
봉분은 평면형태가 정사각형으로 괸 土墳으로 한 변의 길이 9.5m, 높이 약3m이며, 봉분 아래에는 십이지신상을 이용하여 호석을 설치하였다. 호석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아 면석으로 하고 네 귀퉁이에는 우주를 세웠으며 무사의 옷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탱석을 각변마다 세 개씩 배치하였다.
면석과 탱석위에는 갑석을 올렸다. 묘실은 봉분 남쪽으로 치우쳐 직사각형의 상자형으로 축조된 횡혈식 석실인데, 역시 장대석으로 쌓았다. 묘실 동벽에서 잇달아 남쪽으로 연도가 나 있고 묘실 서벽 가까이에 안상문이 새겨진 관대가 설치되었다.
이와 같은 네모 무덤은 신라고분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그 계통을 정하기 어려우나 당시의 석탑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구조와 함께 통일신라시대 얼마 안 되는 십이지신상을 갖춘 고분으로 중요하며 경남 거창, 진주 등지에서 나타나는 고려전기 방형호석 고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경주유적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 김유신장군묘 (2011년 9월) (0) | 2011.03.12 |
---|---|
◆ 2010 년 12월 불국사 돌아보기 (0) | 2010.12.16 |
◆ 9월의 경주불국사 (사적502호) 즐겨보기 (0) | 2010.09.10 |
▣ 경주 전 진평왕릉 (0) | 2010.08.11 |
♥ 황룡사지 (0) | 201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