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만난 봉은사,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집안이 불교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집안은 화암사를 원찰로 두었으며, 그의 부친 김노경은 해붕 스님과 깊이 교유했다. 추사 자신도 33세에 해박한 불교 지식을 종횡무진 구사한 '해인사중건상량문'을 썼으며, 서른살 무렵에 만난 초의선사와는 평생을 교유했다.
만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다녀온 그는 해배 후 경기 과천에 과지초당(瓜地草堂)을 짓고는 은거하면서 이곳에서 가까운 사찰인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나중에는 이곳에 방을 두고 기거하기도 했다.
이 무렵 봉은사에서는 남호(南湖) 영기(永奇)와 운구 한민, 당시 봉은사 주지 호봉 응규를 중심으로 화엄경을 판각하는 판전 불사가 완성을 보자 추사는 그 현판을 썼으니 그가 죽기 3일 전이었다.
이런 인연에 주목한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관장 화범스님)이 봉은사(주지 원학스님)와 함께 봉은사와 추사를 중심 고리로 삼아 조선후기 불교와 유교의 소통을 조명하는 특별전 '봉은사와 추사 김정희'를 마련해 오는 25일 개막한다.
12월12일까지 계속하는 이번 특별전에는 추사 글씨인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을 필두로 보물 3건, 지방문화재 5건을 포함한 77건 124점이 자리를 함께한다. 대구 은해사 소장 편액 '佛光'(불광)과 '大雄殿'(대웅전)도 공개된다.
전시는 크게 봉은사의 역사를 돌아보는 코너와 추사와 불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섹션의 2부로 구성한다.
봉은사(奉恩寺)는 원래 이름이 견성사(見性寺)였다가 연산군 6년(1501) 정현왕후의 명으로 봉은사로 이름이 바뀌고 왕릉 추복사찰로 번성했다. 명종 5년(1550년)에는 문정왕후가 봉은사를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로 삼았으며 중종 2년(1502년)에는 승과(僧科)를 부활하면서 봉은사에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병자호란에 전소된 봉은사는 이후 경림(敬林)과 선화(禪華)의 주도로 중창되고, 정조 14년(1790)에는 남한산성의 개운사, 북한산성의 중흥사, 용주사와 함께 전국 불교를 관장하는 5대 규정소(糾正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증언하는 유물로 이곳 소장품들인 고려시대 청동 은입사 향완(1344), 홍무 25년(1392)명 대웅전 동종, 대웅전 삼장보살도(1892)를 비롯해 이곳에서 치른 승과에 합격한 사명당 유정의 대구 동화사 진영(1796)이 모습을 드러낸다.
근대기 봉은사의 흔적을 반영하는 유물도 선보인다.
을축년(1925) 7월17일, 한강을 덮친 대홍수 때 당시 주지 청호는 사중을 불러 모아 708명을 구하고, 재물을 풀어 이재민을 구호했다. 이에 광주와 고양 주민들이 수해구제공덕비를 세우고, 당시의 지도층 인사들이 이를 기리는 각종 시와 글, 그림을 모아 불괴비첩(不壞碑帖)이라는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이와 관련한 유물이 선뵌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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