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황남대총,
부부 무덤 아닌 부자 무덤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옛 무덤인 경북 경주 황남대총
이주헌 전주박물관 학예실장, 최근 학술지서 파격주장 펼쳐
한반도에서 가장 큰 옛 무덤인 경북 경주 황남대총이 신라 왕과 왕비가 묻힌 무덤이 아니라 선후대왕이 나란히 묻혀 권력을 과시한 대형 기념물이란 주장이 나왔다. 고고학자인 이주헌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반년간 학술지 <신라문화> 45호에 최근 발표한 ‘경주 황남대총 북분 주인공 성격 제고’란 논문에서 부부의 무덤이란 기존 학계의 통설을 통째로 뒤엎었다. 남분과 북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붙은 이 거대한 쌍둥이 무덤(쌍분)을 왕과 왕비 무덤으로 볼 만한 논리적 근거가 없으며, 5세기 눌지·자비·소지 마립간(왕의 당시 호칭)으로 왕통이 세습된 것을 과시하는 선후대 왕들의 기념비적 무덤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은제 허리띠 ‘부인대’라는 명문
의식용도로 넣은 부장품 주장
귀고리도 실제 착장 흔적 없어 쌍둥이 무덤형식 과시용 추정
남분은 부왕 눌지마립간
북분은 아들 자비마립간 주장
그러나 이 실장은 1985, 199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나온 남분, 북분 발굴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부인대’ 명문 띠꾸미개는 묻힌 이가 몸에 착용하지 않고 관의 외부 또는 부장품 수장부에 의식 용도로 넣은 부장품으로 추정되므로 성별을 가리는 결정적 잣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묻힌 이 머리 쪽의 부장품 수장부에서 6점의 둥근고리칼(환두대도)이 발견됐기 때문에 큰 칼이 없다는 것도 잣대로 삼기는 어렵다고 했다. 남성 지배자의 무덤인 경산 임당동 고분처럼 칼을 주검 머리맡에 둔 다른 사례들이 보고된 것도 이를 반증한다고 한다. 태환이식 출토품도 실제 무덤 주인이 착장한 흔적은 보이지 않아, 순장된 다른 여성이 쓰거나 의식용 제구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가락바퀴의 경우 고대 일본과 국내 다른 고분의 발굴 성과를 비교해보면, 실제 실 뽑는 도구 기능보다 매장의례 기물로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도 이씨는 논거로 제시했다. 출토 인골에 대한 체질인류학적 분석을 토대로 하지 않고, 착장유물의 존재 유무를 근거로 판별하는 연구법은 더 이상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북분은 왕비의 것’ 뒷받침했던
은제 허리띠 ‘부인대’라는 명문
의식용도로 넣은 부장품 주장
귀고리도 실제 착장 흔적 없어 쌍둥이 무덤형식 과시용 추정
남분은 부왕 눌지마립간
북분은 아들 자비마립간 주장
이 실장 주장의 뼈대는 학계에서 그간 북분이 여성 것이라고 본 근거들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북분에서 나온 ‘부인대’(夫人帶)라는 은제 허리띠 끝의 꾸미개 명문과 태환이식이란 굵은 귀고리 출토품이다. 또 남성 지배자 무덤에 흔히 나오는 대도(큰 칼)가 안 나오고 실을 감는 데 썼던 가락바퀴(방추차)가 나왔다는 점도 여성의 무덤으로 봤던 근거다. 금관과 큰 칼이 나와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분에는 이 유물들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부인대’ 명문 자체가 주문자의 성별을 구분하려 새긴 것이므로 북분은 왕비 또는 왕족 부인 것이란 견해가 통설이었다.
북분에서 나온 ‘부인대’(夫人帶)라는 은제 허리띠 끝의 꾸미개 명문.
이 실장은 더 나아가 표주박 모양을 한 황남대총의 쌍둥이 무덤 형식이 내물마립간(재위 356~402)의 아들로, 석탈해 왕가 계열인 실성마립간(재위 402~417)을 죽이고 정권을 빼앗은 눌지마립간(재위 417~458)의 적통을 후대왕들이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념물 성격이란 주장도 폈다. 5세기 초부터 80여년간 눌지에 이어 자비마립간(재위 458~479), 소지마립간(재위 479~500)의 김씨 왕계 세습체제가 확립되면서 계보관계를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거대한 능이 연속되는 표주박형 무덤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먼저 들어선 남분은 자비마립간이 쌓은 부왕 눌지마립간의 것이 되며 북분은 소지마립간이 쌓은 자비마립간의 능이 된다.
이에 대해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 등 학계 중진들은 신라의 대형 표형분에 대한 기존 연구의 맥락을 무시하고, 세부 유물의 연대도 곡해했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수십년간 여러 설들이 엇갈려온 황남대총 주인공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