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석굴암 십일면관세음보살상(복제품)
관세음보살은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합니다.
이 보살은 중생의 여망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구제하여 준다고 합니다.
석굴암 보현보살상(복제품)
자비나 이치를 상징하는 보살로, 모든 보살의 이법(理法)을 실천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중생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덕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석굴암 문수보살(복제품)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나는 보살
보현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부처의 협시보살이다.
'사'새겨진암키와 와'흥'이새겨진 수키와
흥륜사터 출토
흥륜사터 출토 연꽃무늬수막새
감은사지 사리함
불교미술실 2에는 금동불만 따로 모아 둔 작은 전시실이 있다.
금동불
금동불은 동의 재련과 합금, 주물, 도금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숙련된 주조기술과 당시 상당한 고가였던 동과 밀납 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금동불을 많이 만들었을까요? 정교한 조각이 가능할 QNs 아니라, 내구성 또한 뛰어났기 때문일 겁입니다. 이와 아울러 경전에서 일컫는 것처럼 부처의 몸에서 나는 황금색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금동불은 백률사 약사불처럼 2M 내외 것이 있는가 하면, 10cm 내외의 아주 작은 까지 그 크기가 다양합니다. 백률사 약사불 같이 커다란 금동불들은 법당의 주존불이었다면, 10cm 내외의 금동불은 개인이 가지고 다니던 호지불(護持佛)이거나, 사리갖춤 가운데 하나 혹은 이동형 불감(佛龕)에 안치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금동불은 새로운 불상 양식을 다른 지역으로 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말기 신라의 금동불은 기술적인 미숙함을 보이기는 하지만, 편단우견에 둥근 단지를 쥐고 있는 독특한 금동불을 창안하는 등 독창적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하였습니다. 통일 후 신라는 고구려, 백제의 문화를 아우르고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흡수하여 곧바로 주조 기술의 측면이나 조각의 측면에서 당대 최고의 금동불을 만들었습니다. 백률사 약사불, 불국사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이 신라 3대 금동불입니다.
일광 삼존불(6세기 후반)과 입상불(7세기 전반)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머리(황룡사 출토), 반가사유상. 모두 7세기 전반 제작
셋 다 보살상으로 7세기 전반 작품.
불입상 (부처 입상) 모두 8세기 중엽 작품
모두 비로자나불로 좌측부터 안압지 출토(9세기 후반), 나머지는 출토 미상으로 8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
부처. 9세기 전반에서 10세기 전반 작품으로 가운데 것은 안압지 출토입니다.
'☆-박물관 전시·관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박물관 미술관 3.(팔부중상/천왕상) (0) | 2010.05.24 |
---|---|
경주박물관 미술관 전시물 2.(부처/보살) (0) | 2010.05.24 |
경주박물관 고고관(국은 이양선실) (0) | 2010.05.24 |
경주박물관 고고관 (제3전시실) (0) | 2010.05.24 |
경주박물관 고고관 (제2전시실) (0) | 2010.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