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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계, 조선 명기 '홍도야 울지마라' 사라진 묘비 복원

박근닷컴 2010. 7. 17. 21:27

경주 문화계, 조선 명기 '홍도야 울지마라'

아파트공사중 사라진 묘비 복원 한목소리
홍도 자작시 새긴 비석… 궁중기생 연구 가치 높아

은윤수기자 newse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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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포도밭에서 발견된 홍도묘비
 
아파트 공사 중 사라진 조선명기 홍도의 비석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경북 경주에서 일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최효식 교수 등이 1990년 발견한 자료에 따르면 경주시 도지동 동광포도원에서 '동도명기홍도지묘(東都名技紅桃之墓)'라고 쓰인 묘비와 묘가 발견됐다.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오면서 2005년 무연분묘 개장공고를 하고 건천읍 천포리의 납골당에 안치했다. 하지만 비석은 원인을 알 수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발견 당시 화강암으로 된 이 묘비석은 높이 1.2m, 너비 50㎝, 두께 20㎝ 규모로 비문에는 홍도가 지은 자작시 등 388자가 예서체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는 것. 이 비는 홍도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 뒤인 1851년 8월에 건립됐다.

홍도의 이름은 최계옥, 자는 초월산이다. 상궁으로 있을 때 임금이 내린 별호가 홍도다. 아버지는 가선대부를 지낸 최영동이고 어머니는 세습기생이었다. 홍도는 1778년에 태어나 영특했고, 10세에 시와 서에 능통하고 미모가 뛰어났으며 14세에 예능에도 능했다고 비문에는 기록돼 있다.
20세가 되면서 노래와 춤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홍도는 서울 초동에 살던 당시 임금의 장인 박상공의 첩이 됐다. 홍도는 나중에 고향인 경주로 돌아와 기생으로 지내다 45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비문을 판독한 동국대 최효식 교수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홍도는 당시 명성이 높았던 기생 중 대표적 인물로 보이며 당시 발견된 묘비는 궁중기생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홍도 비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입간판만 세워져있어 경주 시민과 시민단체 등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입간판 용역을 맡았던 김호상(45ㆍ신라문화유산조사단 실장) 박사는 "전라도 부안에는 홍도와 같은 시대의 매창을 기리는 매창공원이 조성, 매년 매창문화제가 열리고 있다"며 "홍도도 인근에 납골묘와 홍도공원, 묘비석 복원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경주지역 시민단체들도 분실된 묘비석을 찾고 홍도를 기리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경주지역 시인 김명석씨는 "지역의 문인들은 1978년부터 홍도의 분묘임을 알고 벌초도 하고 술잔도 올렸다"며 "묘비석이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10/07/14 02: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