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사 터에 있는 13층 석답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졌다. 13층이라는 층수도 독특하고 2층부터는 10분의 1씩 축소한 것도 특이하다. 전체 높이 5.9m. 기단폭은 2m. 기단은 단층으로 막돌을 쌓았고 그위에 탑신을 세웠으며 상륜부는 없어졌다.
1935년 5월 24일에 국보 40호로 지정보호되었으며 안강읍내에 있는 유일한 국보급 문화재이다.
<백과사전 설명>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정혜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13층 석탑. 국보 제40호. 높이 5.9 m, 기단 너비 2.1 m. 신라 때 작품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기단은 현재 단층 토축(土築)으로 고태(古態)를 보이고 있으나 이것이 어느 정도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초층 옥신은 특히 큰데, 사우(四隅)에 굵은 사각형 석주를 세우고 그 안에 양측으로 우주(隅柱)에 붙여 소주(小柱)를 세웠으며 그 위에 인방(引枋), 아래에 하방(下枋)을 걸쳤고 이러한 시설은 4면에 모두 같이 설치되었다.
초층 옥개석은 옥석(屋石)과 받침이 별석으로 옥석은 8석, 받침은 4석으로 되었으며 받침수는 3단이다.
옥개받침은 각층 3단으로 초층에서와 같고 상륜부는 노반(露盤)이 남아 있을 뿐이다. 탑은 보기드문 13층이며 초층에 비해 2층 이상이 일반적인 체감의 비례를 무시하고 줄어든 점 등, 특수한 형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초층 옥신 4면의 감형(龕形) 개설과 아울러 기단도 통식에서 벗어난 특수 형태로 축조되었다.
2007년도 모습
2010년 현재 모습
옥산의 문화재 지킴이 (경주문화재해설사) 정기열선생님
동방 5현(五賢)의 한 분인 회재 이언적 선생을 제향하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회재 선생이 공부하던 독락당(獨樂堂)이 나오고,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르면 가남지이 마을에 신라 석탑으로는 특이한 형식의 13층 석탑 1기가 서있다.
신라의 석탑으로 그 유래를 찿아볼 수 없는 특이한 탑이다.
이 절터는 신라 선덕왕 원년(780)에 백우경(白宇經)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만세암(萬歲庵)이라 불렀는데, 이후 임금이 와서 보고 '정혜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도덕산을 배경으로 하고, 독락당과 옥산서원을 가로지르는 계곡의 상류에 위치한 정혜사지의 경관은 13층 석탑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탑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탑 주위에 흙으로 축대를 쌓고 축대 가운데에 2단의 괴임을 받치고 1층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2층부터는 몸돌없이 지붕돌만 얹져 13층을 이루었다. 별도의 기단부를 만들지 않아서 인지 일층 탑신부가 탑 전체의 기단부 같은 역할을 하고, 2층부터는 일반적인 탑의 상륜부를 올려놓은 듯한 매우 특이한 형식의 석탑이다.
일층 몸돌은 판석을 사용하지 않고 목탑의 형식을 따라 네개의 사각기둥을 세우고 문지방과 상인방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작은 사각기둥을 세워 감실을 구성하였다. 2층부터는 지붕돌의 체감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몸돌이 거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지붕돌의 받침돌은 모두 3단이며 낙수면은 거의 직선에 가깝다. 상륜부에는 노반만이 남아 있다.
전탑이나 목탑을 만들때 조성하는 흙축대, 목탑 형식의 일층 몸돌과 감실, 13층의 층수 등은 통일 신라 전형의 석탑에서 완전히 벗어난 돌연변이 같은 석탑 구조이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의 특이한 구조는 유래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동경통지[조선 인조 (1623∼1649)] 지리지 경주조에 보면 '신라 37대 선덕왕 경신년(780)에 당(唐)의 첨의사 백우경이 참소를 입고 이곳에 와 영월당과 만세암을 지었는데, 선덕왕이 후에 정혜사라고 고쳤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면 정혜사지는 신라 사람이 아닌 당나라 사람에 의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혜사지 13층 석탑의 유래는 당시 중국의 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주로 목탑과 전탑을 만들었는데, 이런 중국의 조탑 형식과 신라의 석탑 형식을 잘 조화시킨 탑으로 보인다.
세부적으로 비교해 보면 흙축대와 13층의 층수는 목탑과 전탑의 형식이고, 일층 몸돌은 목탑의 형식, 지붕돌은 석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신라 석탑 중 가장 특이한 형식의 탑으로 정혜사지의 탑 이후 다시 만들어진 예는 찾을 수 없다.
[신라사람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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