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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신광면- 법광사지

박근닷컴 2011. 3. 25. 20:51

 

법광사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1) 때 건립된 사찰로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주위의 건물들은 195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어떤분은1936년 동해 임곡에 살던 스님이 불사를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후 그아들이 지켜온다고하니

1952년도 기록은 그아들의 기록이 아닌지...) 
법광사터에는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귀부, 당간지주 등의 유물이 남아 있으며

조선 영조 때에 세운 사리탑 중수비가 있어 법광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가 보이는곳으로 부터 위로 법광사터로 추정...

 

 

 


법광사 석탑 사리구 통일신라(846년)


법광사지 석탑기 조선(1747년)

동국대박물관에 있다고 2004년도 어느자료에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궁금하다.

[위 사진는 문화재청자료]

 

법광사터에는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당간지주 등의 유물이 남아 있으며

조선 영조 때에 세운 (위사진)사리탑 중수비가 있어 법광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왕명에 의하여 건립된 사찰인 법광사터.

 법광사는 건물 규모가 525칸이나 되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한다.

현재 법광사터에는 1952년에 건립한 법광사가 있고,

 석가불사리탑, 연화석불좌대, 쌍두귀부, 당간지주와 수많은 초석들 그외 석재들이 남아 있다.

연화석불좌대는 소실된 대웅전 석가불의 좌대로 추측되는데, 높이 1.1m, 직경 2.2m, 원경 0.5m이다.

이중기단 위에 현재 3층으로 된 석가불사리탑은 인도석가모니 진신사리 22립(粒)을 보관하고

왕족의 혈통을 계승하여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탑의 높이는 4.2m이다. 쌍귀부는 너비 1.4m, 높이 1.8m이다.

법광사 북쪽방향 150m 지점에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이 있다.

 

 

(현)법광사

 

 신라때 법광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52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동편  부처님은 항마촉지인에 매듭도있다.

 

개금했으나 자세히보니 석불이다...

 

 

 

1952년에 지은 법광사 마당에 남은 석재들

 

 

 

 

 

 

 

 

 

 

 

 

돌담길을 따라 (현)법광사뒤를 돌아가면.....삼층석탑이 있다.

 

 

 

안내문에는 '조선 영조때 5층석탑을 고치는 과정에서' 라고 나오는데

현재 탑주위에 탑부재가 있는 걸로봐서 조선 영조때까지는 5층탑으로 되 있었던걸로 보인다.

주위에 남아있는 탑부재와 현재 삼층석탑재와는 다른것으로

이전에 층수에 대해선 오류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1876부터1886년까지 폐허화된 절을 중흥시키고자 중건하는 과정에

원통전을 짓고...1887년에는 5층중 3층만 남아있던것을 중수하는데

1750년에 건립한 '법광사석탑기'라고 사리탑중수기가 나왔다.

그뒤 화제로 소실되 다시 세우지못했다고 전한다.

 

불사리탑... 현재는 삼층석탑으로 있다.

 

 

어문

 

 

 

 

 

연화대좌 있는 곳으로 향하는길에  초석들이 많다..

 

 

 

연화석불좌대가 있다.

 

 

 

연화석불좌대

 

 

 

 

 

금당지 초석

 

 

연화대좌에서 서편 언덕위에 쌍귀부가 있다.

 

 

 

 

문양

 

귀부꼬리..

 

주변으로 녹유조각이 출토됨

 

 

(아래자료출처-인터넷검색)

飛鶴山法廣寺址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상읍리 967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왕명에 의하여 창건된 법광사라고 전한다. 
 

석가불사리탑 828년(흥덕왕 3) 건립, 846년(문성왕 8) 지금의 위치로 이건〕,

연화석불좌대, 쌍귀부,배례석,석불,비좌,주초석, 당간지주와 사리탑중수비가 있다.

 

법광사 석가불사리탑중수비(法廣寺 釋迦佛舍利塔重修碑) 비문에 의하면 신라 24대
진흥왕 10년에 양나라 무제가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부처의 사리를 보내오자,

진흥왕이 궁으로 맞아 들였다. 그 뒤 진흥왕의 손자 진평왕이 원효에게 명하여

법광사를 짓게 했다고 한다.

 

1750년도까지는 2층의 대웅전 등 525칸의  대찰이었으나 1863년 방화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법광사는 1952년에  창건(원통전,산령각,진영각,요사)

이 석탑의 수호를 위하여 탑계(塔契)가 있었으며, 탑에 빌어 사내아이를 얻으면

모두 이름에 탑(塔)자를 넣었다는 말이 있다.

 

중수비에는 사리장엄구《옥함(玉函)이 있고 그 안에 순은(純銀) 사리함이 들어 있으며

다시 그 속에 자수(刺繡) 놓은 비단으로 싼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에 대한 언급도 있다.

 

개탑(開塔)할때의  진신사리 출현시의 이적(異蹟)이 적혀 있는데,

비문에는 그 날 밤 사리를 열자 서광이 하늘까지 이어져 비쳤으며, 닷새 동안 둘레를 온통

환하게 비추었다(其夜 瑞光亘天連五夜 草木欄洞 晃如晝)라 하였다.

 

그 이후로 이 고을을 신광현(神光縣)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유한 (申維翰); 1681~1752           본관: 영해(寧海).    호: 청천(靑泉).

1713년(숙종 39) 문과에 급제,  

제술관이 되어 통신사 홍치중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다.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에 이르렀으며, 문장에 능하고 걸작시(傑作詩)가 많다.
  

저서:청천집(靑泉集).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해유록(海遊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