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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그 낯선 땅 (5) 서안 - 화청지

박근닷컴 2011. 8. 31. 02:28

 

 

도로변 이정표에 안강이라는 지명이 어서....

 

점심시간..

 

 

중국 맥주

 

 

 

면종류다...허리띠만큼 굵을 국수...ㅎ

 

 

 

실크쇼핑

 

 

 

 

누에고치에서 실을뽑고있다.

 

 

누에고치 속을 꺼내 펼쳐보여준다.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사는이가 없슴~

 

화청지 입구

 

 

 

 

 

 

 

역사 기록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에 이곳에 려궁(驪宮)을 세웠으며

당나라 현종 때에는 이곳을 더욱 크게 넓힌 뒤 이름을 화청궁(華淸宮)이라고 고쳤는데

이곳이 온천 위에 지워졌으므로 화청지(華淸池)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청지(華淸池)는 서안에서 25㎞ 정도 떨어진 여산(驪山) 산기슭에 있는 온천으로  
산세가 뛰어나고 목욕하기 적당한 43도의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때부터 역대 황제들이 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다.

 

주나라때 려궁,진나라때 려산탕,한나라때 이궁,당나라때 온천궁, 화청궁은 모두 화청지에 건설된 역대황제들의 별궁 명칭이다.

 

 

 

60만 ㎡의 넓은 면적 안에 화청궁을 만들어 중국 4대 미인으로 꼽는 양귀비와 생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구조는 4(), 10(殿), 4(), 2(), 5()으로 연못가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지고

석방이나 어전, 정자 회랑을 배치한 중국식 정원을 만들었으나 세월이 지나며 많이 개. 보수되고 있다.

 

 

 

구룡탕- 아홉의 용조각이 물을 뿜어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 시 '장한가' 를 썼다.

요즘 밤에는 무용극 '장한가'를 하고있다. 위사진이 그 무대이다.

큰 호수와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띤 깃발, 옛 건물들 ...

산을 배경으로 하여 구룡탕 호수전체가 무대이다.

 

 

밤이면 이렇게 장한가 무용극 공연을한다.

지난밤 에어컨을 틀어놓고 잔후.. 감기에 걸려 안가고 싶었으나

어찌하다 가게 됐는데 그런데로 괜찮았다. 기침 참느라 힘들었다.

 

중국의 명감독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감독의 작품이다. (중국화로 320위안-1시간20분공연)

이공연은 북경 올림픽 개막전 연출가 장예모 감독이

거대한 스케일로 만든 야외무대라고 TV에서 소개한바가 있다.

 

'장한가' 밤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제약조건이 있다. 카메라를 일체 가져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카메라 촬영을 하면 공연을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어 집중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항검색대처럼 생긴 검표대에서 공안이 일일이 검사를 하였다.

 

공연내용을 찍으려면 휴대폰으로는 촬영할 수 있다.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는데, 화질은 좋지 않다.

또 모두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이어서 계속 촬영하기도 좀 그렇고.. 기침도 계속나고..

공연이 시작 되었을 때 화청지와 여산전체가 무대로 변한다.

화청지의 연못에서 무대가 올라오고, 연못에서 물줄기가 내 뿜으면 거기에 레이져를 쏘아

커다란 영상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멀리 여산에서 인공달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전각 이곳 저곳에 조명을 하이라이트 시켜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모를 정도였다.

  

공연은 수시로 장면이 바뀐다. 그러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나레이터가 중국어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무용만 하고 대신 남성나레이터가 감정이입을 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감동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나 나는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소감을 말하라면 중국의 유명관광지에 그 지방의 특색이 맞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화청지 안내도

 

당 현종은 일년 중 일곱 달을 여기에서 살았다. 양귀비(718~756)의 본래 이름은 양옥환이다.

산시성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쓰촨성 관리이던 숙부 양립의 집에서 자랐다.

양귀비는 현종의 18번째 아들(수왕)의 부인인 며느리였다. 현종의 본처 무혜비가 병으로 죽었다.

본처를 잃고 시름에 젖어 있다가 양귀비를 보고 홀딱 반했는데 며느리를 어찌 할수가 없어 끙끙대니

내시가 왕자들을 모아놓고 효경을 사흘동안 가르쳐 수왕이 아내를 바쳤다는 이야기는 다 아는 역사이다..쩝

 

현종은 아들이 너무 많아서 태자를 세우면 그 아들의 이름만 알고 나머지 자식들은 이름도 잘 몰랐다함.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인 수왕의 비로 17세에 궁에 들어와 시, 노래에 뛰어나고

키가 164cm, 체중이 70kg이 넘는 그래머의 보기 드문 절세미인이었다.

현종은 며느리를 뺏아 아내로 만든 것이다. 양귀비는 22세부터 5년간 비구니 생활을 시킨 후 27세에 귀비로 맞았다.

당시 현종의 춘추는 61세이다. 당시 여자가 아이가 없으면 사찰로 가서 5년을 수양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에 양귀비는 사찰을 갈 수 있었고 아내로 맞게 되었다.

 

755년 마침내 안록산은 안사의난을 일으켜 현종은 궁지에 빠진다. 
반란을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현종은 깜짝 놀라 가랑비 내리는 한여름 새벽에
승상 위견소, 양국충, 양귀비 자매와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장안성 연추문을 벗어나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일행은
마외파(지금의 섬서성)에 이르렀으나, 호위병사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현종에게 양국충과 양귀비를 비롯한
양씨 일족들을 모두 죽이기를 강요했다. 결국 양국충과 일족들의 목이 잘리고 시신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양귀비도 어쩔 수 없이 마외역관 앞의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하였다 전하며

또 한가지 일본으로 갔다는 설도 있다. 

 

 

서시나 양귀비와 같이 절세가인으로 손꼽히는 미인들에게도 결점이 한 가지씩은 있었다한다.

중국의4대 미인들 - 서시,초선,왕소군,양귀비를 보면

먼저 초선의 결점은 귀(방울)가 작은 것이었다. 이 약점을 감추기 위해 그녀는 늘 큰 귀고리를  했다고 한다.

 

날아가는 기러기를 떨어뜨렸다는 미녀 왕소군의 약점은 어깨가 체형에 비해 너무 작아

옷을 입을 때 어깨 부분에 큰 보형물(일명 뽕)을 넣어 그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였다.

 

서시는 발이 크다. 그래서 발을가리기위해 나막신에 긴치마를 입고 다녔다하며.

마지막으로 양귀비는 몸에서 암내가 지독하게 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매일같이 각종 꽃을 우려낸 물로 목욕을 하였고,

그 모습과 꽃 향기에 당 현종이 뽕 갔대나 뭐래나...

 

양귀비 무덤은 서안 서남쪽 70㎞ 지점에 있다. 그의 무덤에는 흙이 없다하는데.

이유는 사람들이 양귀비 무덤의 흙을 얼굴에 바르면 미인이 된다 하여 다 퍼갔기 때문에....ㅎ

 

 

 

 

 

 

 

 

온천궁 대형벽화. 이 벽화는 개원28년 당현종이 온천궁에서 양귀비와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양귀비가 목욕후 머리를 말렷다는 곳이다. 

 

 

 

 

 

 

 

비상전(飛霜展) 즉 서리가 내린다

겨울에 눈이 올때 건물 주위가 온천수로 인해 따뜻하니 눈이 쌓이지 않는단다

 

 

화청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745~755년 사이에 매년 10월이면 당현종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양귀비 자매와 측근 대신들과 함께 화청지로 와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야 장안으로 돌아갔다 한다.

이 양귀비 입욕 조각상은 광동성 연산현의 흰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높이 3m의 입체 조각상으로 몸에 여우가죽을 걸치고

육체를 반쯤 노출시킨 양귀비가 머리를 숙여 요염한 자태로 천천히 욕탕에 들어가는 모습이라 한다.

 

 

 

 

 

양귀비가 석류를 좋아 했다고

오래된 석류나무가 화청지 곳곳에 있고 실제로 시 외곽엔 석류 과수원이 많다.

 

 

해당화를 닮았다하여 해당탕

 

 

 

 

 

 

 

 

 

 (온천수가 있다)연화탕

 

 

 

 

 

 

 

 

 

 

 

 상식탕(尙食湯)

 

현종과 양귀비의 심부름하는 몸종들인 시녀들의 목욕탕이다.

탕 바닥에 어른 발뒤꿈치 들어갈 정도 크기의 발자국 같은 홈이 여섯 개 있다.

양귀비나 황제의 몸에 손대는(수발)하는 손은 하인 손이라도 자기 발을 손으로 닦을 수가 없기 때문에

구멍에 발뒤꿈치를 넣고 비벼서 때를 닦았다고 한다. 자기 더러운 발을 만지면 황제를 모실 수 없다.

 

 

성진탕

 

 

성진탕(星辰湯)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목욕탕이다. 그는 목욕을 하면서 정사를 노했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면적이 필요해서 욕탕홀이 넓다. 크기가 다른 탕의 배 이상이다. 옆에는 방이 있는데 이곳은 목욕하던 옷을 갈아입는 홀이라고 설명한다.

모두근세에 지은 집들이고 장치해 놓은 것도 허스름하고 볼품도 별로 없다.

 

 

온천수는 지금도 나온다

이 온천의 물은 석탄, 탄산, 망간을 포함하며, 항상 43도를 유지하고 수량도 풍부하다함.

 

 

 

 

양귀비, 백옥상앞에서 앞다투어 사진찍으려고 줄을 선다.

나도 그기에 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