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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그 낯선 땅 (6) 서안 - 병마용갱 1

박근닷컴 2011. 8. 31. 02:47

 

진시황조상

하나의 산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무덤, 그 깊은 곳 어디엔가 그의 묘실이 있을텐데 아직 발굴되지 못하였다.

그의 지하궁전은 만들어져있으나 문헌이 없어 상상속의 묘실이다.

진시황-이름은 영정, 13세에 즉위, 22세에 6국(초,연,조,위,한,제)을 통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의 초대 황제... BC221년경으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중국 4대 역사(力事)중에 하나인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병마용갱을 가기 위해 전동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흙을 구워 만든 병사와 말 등의 모형)은 유약을 바르기 전의 도자기처럼 황토색을 띤다. 하지만, 원래 병마용은 대부분 채색돼 있었다고 한다. 병사의 머리는 검정, 얼굴은 분홍, 갑옷과 기타 장신구는 군청과 초록·빨간색 등으로 말이다.

게다가 병사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빈손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른 병마용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많은 역사학자는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역도원의 ‘수경주’ 등을 토대로 진나라 말기 진의 수도 함양을 공격했던

항우와 그의 군대 때문으로 본다.

항우의 군대가 진나라를 침범하자마자 유적 여러 곳을 불태웠는데, 이 과정에서 병마용갱도 태우고 병마용이 든 병장기를 거둬가

자신들의 무기로 재사용했다는 것.

실제로 병마용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발굴 현장에서 목조로 된 기둥이 새카맣게 불에 타고 그을린 흔적을 통해

이 주장과 역사서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다한다.

병기만 가져가고 병마용은 그대로 두었다...??

 

 

 

 

무더운날씨로 우리는 전동차를 탔지만 걸어도 멀지않다.

 

 

 

시황제의 무덤 자체는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흙둔덕(산) 바로 아래, 내벽 안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피라미드형 흙둔덕은 원래는 낮고 숲이 우거진 산처럼 보이도록 조경된 것이다. 능 내부는 광대한 지하궁전으로, 각지에서 징발된 70만여 명의 일꾼들을 동원해 36년이 넘게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역사가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노동자들은 매우 깊은 지하까지 파들어갔다. 그들은 청동으로 바닥을 깔고 그 위에 관을 안치했다. 그들은 궁전, 누각, 집무실의 본을 만들고 멋진 그릇, 값진 석재와 진귀한 물건들로 묘지를 가득 채웠다. 기술자들은 침입자가 나타나면 석궁이 자동적으로 발사되도록 장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국의 여러 강, 예컨대 양쯔 강과 황허 강 심지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까지 수은으로 만들어 흐르게 하고 기계적으로 순환되도록 장치했다.

반짝이는 진주로 천상의 성좌를 천장에 설치하고, 금, 은으로 새를 만들었으며 옥을 쪼아 소나무를 만들었다. 마차는 바닥에 진열했다. 등불은 고래기름을 연료로 써서 영원히 탈 수 있도록 했다.

 

 

시황제는 죽음에 대비해 50km 에 달하는 무덤 부지와 그 속에 묻을 부장품을 마련하고. 그 속에 든 보물은 시황제의 사후 약 2,100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되었고, 1974년 3월 우물을 파던 농부가 처음으로 지하에 묻힌 방을 발견했다. 뒷날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6,000구가 넘는 실물크기의 병사와 병마 도용을 찾아냈다. (키는 약 1.8M로 키가 크다)

  

 

 

진시황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병마용갱이다.

도용들은 모양이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실물을 모델로 했으리라 추측한다.

실제의 마차, 철제 농기구, 청동 및 가죽 재갈, 비단, 아마, 옥, 뼈 등으로 만든 물건들이 출토되었다. 또 활, 화살, 창, 칼과 같은 무기들과 13가지 성분을 합금한 주형도 출토되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이 나고 날카롭다. 예전에는 광물성 안료로 밝게 칠해져 있었던으로 것으로 보이는 진흙 상들이 당시의 군대 규율에 따라 독특한 군사 대형으로 늘어서 있다.

 

 

 

 

 

 

...

 

 

 

 

 

갱은 1호에서 3호까지 있는데..1호 갱은 일반 보병이 주축이다.

젤앞쪽에 무기도 없이 진열해 있는 병사가 총알 아니 활받이라 하겠다.

 

선두에 궁수와 석궁 사수가 배치되여 있고 그 바깥에는 사수 및 보병과 전차병 무리가, 후미에는 갑옷을 착용한 호위병이 줄지어 있다. 부근에서 3개의 방이 더 발굴되었는데, 그 중 한 방에는 1,400개가 넘는 도용이 들어있었고 이것은 전차와 기병을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더 작게 만들어져 있었다. 또 하나의 방에는 진군의 정예 지휘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68개의 상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빈방이었다. 이 4개의 방, 이른바 시안 유물은 고고학자들의 발굴이 진행될 때부터 지붕으로 덮여 보호되었으며, 현장에 세워진 진용박물관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3개의 갱(坑)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1호 갱만 해도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머리 상투를 옆으로 묶은것은 등에 진 화살통에서 화살을 빼기쉽게 또는 싸움에 걸림이 없는방향으로 했단다.

 

 

 

앞줄은 평범한옷이다.

 

 

 

 

 

 

 

 

 

 

 

 

 

 

 

 

 

 

뒤로 갈수록 갑옷차림이다...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인 곳....

 

 

 

 

뭍혀있는 상태..

 

 

 

 

 

복원중인 토용들

 

 

 

 

 

 

 

 

 

 

 

 

 

 

 

 

 

 

 

 

 

 

 

 

 

 

 

 

 

 

 

 

 

 

 

진시황은 500년간 분열되었던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후 황제칭호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했다.

대륙통일후 문자,도량형,국가색깔,마차바퀴의폭 등 갖가지 통일정책을 시행한 황제이다.

 

일설에 의하면 병마용갱은 진시황이 주인이 아니라 그의 고조할머니인 진선태후의 것이라고도 한다.

바퀴폭이 서로 다른 마차들과 그의 통일 정책에 맞지않는 몇가지의 단서들이 병마용에서 발견되고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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