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서 출토된 옻칠 갑옷 미스터리]
'당 태종 정관 19년' 제작연대 선명 "무령왕릉 유물과 같은 옻칠 기술"
"백제 유물에 중국 연호 안 써… 당나라에 바친 황칠 갑옷" 주장도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에서 지난주 출토된 백제 말기의 옻칠한 가죽 갑옷이 고고·역사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관련 학자들은 제작 연대가 분명히 찍힌 명문(銘文) 갑옷이 출토된 데 대해 한목소리로 반기면서도 갑옷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어 향후 백제사 연구가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어제 쓴 듯 생생한 1400년 전 글씨
현장에서 실물을 본 전문가들은 "1400년 세월을 견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토 상태가 좋다"며 "검은색 비늘 조각들이 유리처럼 반짝거렸고, 붉은색 글씨는 바로 어제 쓴 것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고 감탄했다. 1000여 조각의 찰갑(札甲·비늘모양 갑옷)은 가죽에 옻칠을 여러 번 입힌 형태. 이 중 가죽 부분은 부식되고 0.1㎜ 이상의 두꺼운 옻층만 남아 있었다.
1400년 만에 빛을 본 갑옷 글씨가 생생하게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발굴단은 "저수지 뻘층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보존이 가능했고, 백제의 정교하고 뛰어난 옻칠 기술도 글씨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고 했다.
- ▲ 공주 공산성에서 수습한 백제의 갑옷 조각(왼쪽). 오른쪽 사진에는 貞觀十九年(정관 19년), 즉 645년(백제 의자왕 5년)이라는 글자가 붉은색으로 또렷이 적혀 있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국내에서 옻칠된 가죽 갑옷이 출토된 것은 처음. 무엇보다 백제 칠공예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라 주목된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베개와 발 받침대, 수촌리 1호분의 용무늬 대도(大刀) 칼집에도 옻칠이 잘 남아 있고, 기원전 1세기 마한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도 옻칠된 목기(木器)들이 나왔다"며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지는 백제의 옻칠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라고 했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습기가 많을수록 더욱 수명이 길어지는 옻칠 특성이 1400년 세월을 견디게 했다"고 했다.
◇갑옷 주인은 백제 장수가 맞나?
'○○行貞觀十九年四月二十一日.' 갑옷에서 발견된 글자는 갑옷 주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주대박물관은 "당 태종 정관 19년, 즉 64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갑옷 주인을 백제 장수로 추정했다.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이며, 645년은 백제 의자왕 재위 5년째다.
하지만 백제사 전공 학자들은 "백제는 연대를 표기할 때 중국 연호를 쓰지 않고 간지만 썼다"며 백제 갑옷이 맞는지 의문을 표시했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지금껏 발굴된 6~7세기 백제 유물과 관련 자료에는 중국 연호를 쓴 게 없어서 과연 백제가 정관이란 연호를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한상 교수도 "무령왕릉이나 왕흥사지, 능사 등에서 출토된 백제 유물을 보면 중국 연호가 보이지 않고 간지 혹은 왕의 재위연도를 썼다"며 "혹시 백제가 아니라 당나라 장수의 갑옷은 아닌지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전설의 갑옷 명광개?
이 갑옷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무왕 27년(626년)에 당나라에 바쳤다"고 전하는 전설의 갑옷 '명광개(明光鎧)'가 아니냐는 견해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명광개란 황칠(黃漆)을 해서 그 광채가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했다는 갑옷. 중국 문헌인 '책부원구(冊府元龜)'에는 "당 태종이 정관 19년에 백제국에 사신을 보내 금칠(金漆·황칠)을 채취해 철갑옷에 바르게 하니 황금빛 이상으로 빛났다"는 기록이 있다. 출토된 갑옷에 쓰여 있는 '정관 19년'과 정확히 일치해 흥미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혜선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명광개는 황칠한 갑옷인데 이번 갑옷은 옻칠이다. 옻칠과 황칠은 성분이 전혀 다르다"고 했다. 이현숙 학예연구사도 "출토된 갑옷의 구조와 형태상 명광개는 아닌 것 같다"면서 "향후 보존처리 과정에서 갑옷의 구조와 재질, 명문 분석을 통해 더 많은 내용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갑옷은 이번 주 중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로 옮겨져 보존처리에 들어가며, 기간은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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