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鎔范; 용범) |
주로 청동기·철기 등 금속도구의 제작에 쓰인다. 한국 청동기시대의 시작이 언제인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는 아직 완전한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발견된 청동유물을 실제 만들어낼 수 있는 거푸집의 발견과 더불어 많은 문제점이 해결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청동기시대는 자체적으로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수준에 올라 있던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때, 청동도구의 제작에 사용된 거푸집의 발견과 더불어 한국도 기원전 1000년기에는 청동기시대의 기술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발견된 거푸집으로서 가장 알려진 것은 기원전 2~3세기에 칼·방울·도끼·거울·낚시바늘 등의 청동기 제작에 사용된 것들로서, 그 중 전남 영암에서 발견된 것은 이 시기에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가 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청동기를 제작한 거푸집 중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여러 도구의 형태를 하나의 거푸집에 새긴 것들도 있다. 이러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은 활석(滑石) ·사암과 같은 암석 한 쌍을 일정한 형태로 다듬은 다음, 각각 그 위에 여러 도구의 모습의 절반을 파 새기고, 이들을 하나로 합친 다음, 판과 판 사이의 홈에 청동물을 부어 도구를 만들었다. 도구제작을 위해 이렇게 거푸집 한 쌍을 맞붙여야 하는 거푸집을 ‘합범(合范)’이라고 한다. 합범과는 달리 거푸집에는 ‘단범(單范)’이라 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예를 들어 돌 한 조각에 도구의 전체 형태를 파 새겨 그곳에 쇳물을 부어 도구를 만든 것이다. 단범은 특히, 삼국시대의 철기제작 유적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다뉴세문경(多뉴細文鏡)과 각종 방울을 비롯한 정교한 의기(儀器)를 만드는 데는 토제품을 이용한 밀납주조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세형동검시기에 성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국시대가 되면서 철기제작이 매우 활발해져, 곳곳에서는 철기를 제작한 야철(冶鐵)유적이 많이 발견된다. 삼국시대의 야철유적에서 발견된 철기제작용 거푸집은 당시에 철기가 대량생산되었음을 말해주듯, 전 시대의 청동기제작용 거푸집이 주로 돌을 새겨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대부분 흙을 빚어 구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토제(土製) 거푸집은 석제보다 내구성이 떨어지지만 훨씬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서, 철기가 당대에 대량생산되었음을 말해준다. 거푸집의 실제 발견 예를 살피면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은 요녕성(遼寧省) 조양현(朝陽縣) 승리향(勝利鄕)의 예가 있고, 비파형 동모는 함경남도 금야읍(金野邑) 출토 예가 있다. 동부(銅斧)의 예는 요령성의 여대시(旅大市) 강상(崗上), 신금현(新金縣)의 쌍방(雙方)과 벽류하(碧流河) 등의 적석묘, 석관묘, 지석묘 등의 부장품으로 많이 발견되고, 화살촉의 거푸집은 요령 서풍현(西豊縣) 진흥진의 예가 있다.<두산대백과사전>,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영남대 이청규교수 글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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