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관련자료

철기 시대

박근닷컴 2011. 10. 24. 15:52

철기 시대

1) 철기 문화의 발전
→기원전 4세기 이후부터 철기 시대를 맞았다.

⑴ 철기 문화의 보급 시기 : 기원전 4세기경 이후,
기원전 1세기 경부터 철기 사용이 일반화됨

⑵ 전파 지역 :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방은 물론 남부 지방의
김해, 창원 등지에서도 유적.유물 발견

⑶ 유물과 유적
① 널무덤, 독무덤

② 유물 : 철제 무기(칼, 창, 화살촉),
철제 농기구(보습, 괭이, 낫)

⑷ 철기 문화의 영향
① 생산력 증대
② 정복 전쟁의 발생
③ 새로운 국가의 출현(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개인적인 생산 활동이 활발해지고 재산 사유의 경향이 나타나면서 빈부의 차가 생겨났고 계급이 발생하였다. 씨족의 유력자는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많은 가축을 사육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높여 마침내는 지배계급인 귀족을 형성했다. 한편 경제력이 열악한 자들은 생존경쟁에서 패하여 전쟁 포로 등과 함께 피지배층을 형성하여 귀족, 평민, 노예의 계급제도가 성립되었다. 노예는 주로 전쟁 포로, 피정복민, 외국인, 채무 노예, 노예의 자녀 등으로서 토목 사업이나 농경과 가사를 담당하였는데 고대의 관개농경국가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에 비해 노예 수가 비교적 적어 생산을 담당한 사람은 주로 공동체에 속한 농민이었다. 그 외의 피지배 계급으로는 소수의 상인, 수공업자, 병사 등이 있었다. 토지사유제도와 계급제도의 발생은 씨족사회의 특색이었던 평등과 공동의 원칙을 무너뜨렸는데 이것과 함께 교역 발달과 인구 증가를 수반하여 씨족사회의 융합이 촉진된 결과 혈연적인 유대관계는 점차 엷어져 씨족사회는 붕괴되었다.

혈연에 의해 성립된 씨족의 붕괴는 대규모 사회의 성립을 촉진시켰다. 즉 인접한 몇 개 마을이 이주, 정복, 합병 등에 의해 합류하여 혈연에 의하지 않은 대집단, 즉 부족을 구성하였다. 부족은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집락이나 성곽을 만들었고, 신전 등 대경제 조직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립했다. 도시 내부에서는 신관, 귀족, 군사 지도자 등 지배계급의 정치적 권력이 강력했고, 주변의 주민을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군사 정치 조직이 발달하여 여기에서 국가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기원전 3,500년 전 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벽돌로 축조한 신전이 세워졌고 그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집락이 형성되어 경제나 정치의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신관은 큰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