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예품은 그 용도에 따라 소리를 내는 의식용 범음구와 공양을 위한 공양구, 사찰의 장엄을 위한 장엄구 등으로 분류됩니다. 그 외에 스님들이 사용하거나 혹은 지니고 다녔던 석장, 불자, 염주 등도 불교공예품의 한 범주로 포함 시킬 수 있다.
이렇게 범음구와 공양구들을 비롯하여 불교의 다양한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공예품들을 총칭하여 불교공예품이라 한다. 불교공예품은 불교라는 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며, 우리나라 불교의 융성과 쇠퇴 등에 따른 수요에 부응하며 다양한 종류로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의식주 |
공양구 |
장엄구 |
기타 (승려의 지물 등) |
범종, 북, 운판, 목어, 금고 |
정병, 향로, 꽃병, 촛대, 발우 |
불단, 닷집, 불감, 번, 사리장엄구 |
석장, 불자, 여의, 염주 등 |
바라, 목탁, 요령, 금강저 |
의식용 법구로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 금고 등이 가장 널리 제작되었다. 그 외에 승려의 지물이면서도 넓은 의미에서는 의식용 법구로 볼 수 있는 공예품들로 바라와 목탁, 요령, 금강저 등이 있다.
의식구 가운데 범종, 법고, 운판, 목어는 ‘불전사물’이라 하여 부처님의 법음을 소리를 통해 중생에게 전하는 네 가지 대표적인 범음구를 뜻한다.
범종은 소리로 장엄하고, 시간을 알려주며, 귀신을 쫓고 지상과 하늘의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범종이 처음 만들어지게 된 시기는 남아있는 기록이나 건물지 등을 통해 유추해 봤을 때, 적어도 삼국시대 6세기 후반 경에는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범종의 형태를 살펴보면, 대체로 항아리처럼 둥글게 퍼지다가 끝부분이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종의 맨 윗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용머리 조각을 하고 있어 용뉴라 불린다. 용뉴의 뒤로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고, 고려시대의 경우 상단부의 가장자리에 연꽃잎을 세워 붙인 입상화문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범종은 대체로 상. 하단부에 길게 띠를 둘러 문양을 넣어 장식을 하고 그 아래로 사면에 방형 또는 사다리꼴의 연곽蓮廓이 표현된다. 그 안에 9개의 연봉오리 형태가 표현되는데, 이를 형태상의 특징으로 이름 지어 연뢰蓮?라 한다. 이들은 이전까지 유곽과 유두라 불려왔는데, 이는 범종의 부분명칭으로 사용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최근에는 연곽과 연뢰를 사용하고 있다.
종의 하단부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가 표현되고 그 아래로는 띠를 둘러 당초문, 보상화문, 연화문 등의 다양한 식물문으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좌와 당좌 사이에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이나 범자문, 보살상, 번개무늬 등이 장식되기도 한다.
법고는 사찰의 법당 동북쪽에 달아 놓고 아침과 저녁의 예불 때나 법식을 거행할 때 치는 큰 북을 말한다. 북소리가 널리 퍼지듯 불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는 것을 북소리에 비유하여 ‘불법’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며, 진陣을 치고 있던 군대들이 북소리가 울리면 전진하여 적군을 물리치는 것에 비유하여 중생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 불법을 전파하는 것을 ‘법고를 울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운판은 장판長板, 또는 판종板鐘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윤곽의 형태가 마치 구름모양을 하고 있어 운판이라 한다. 운판은 앞. 뒷면에는 문양을 새겨놓은 양면식과 한쪽에만 문양이 있는 평면식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운판이 언제부터 제작.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중국 송대부터 그 명칭이나 형태가 생겨나 사찰범음구의 하나가 되었다고 추정된다.
기록에 보이는 운판의 용도는 원래 잠이 오는 것을 깨우기 위한 목적이나 참선參禪 때에 시작과 해제 등을 알리고자 사용하다가 점차 그 사용의 폭을 넓혀 공양시각을 알린다거나 사람을 집합시키는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도 쓰이게 되었다. 운판의 형태는 구름모양을 본딴 것부터 점차 변형되어 다양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의 통나무 내부를 비게 하여 그 빈 내부를 북채와 같은 나무로 쳐서 소리를 낸다. 중국의 ??백장청규百丈淸規??에 의하면 ‘목어는 재죽齋粥때 길게 두 번 치고, 스님들을 모이게 할 때는 길게 한번 치며, 행자行者 들을 모이게 할 때는 두 번 친다.’고 하여 원래는 식사시간이나 대중을 불러 모으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목어의 형태가 물고기인 점은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승들도 졸거나 게으르지 말고 정진精進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목어는 얼굴부분을 중심으로 그 형태면에서 전형적인 물고기의 형상을 충실히 표현한 것과 용두龍頭나 어룡魚龍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목어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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