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전...
무설전 맞배지붕 측면
관음전 오르는 계단...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 보살도와 관세음보살
관음전 문살
관음전 문살
관음전
관음전 소맷돌
관음전에서 본...전각들
무설전 맞배지붕/대웅전 팔작지붕
비로전
이건물은 751년에 지어졌다는 설과 그보다 빠른 법흥왕대에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임진왜란에 불타 없어진후 여러차례중수 되었으나 쇠락하여
1973년도에 고려 양식으로 신축하면서 기초로 쓰인 석조부분은 옛자료가 있어 신라시대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지붕위에 치미(망새)가 있다.
치미를 올려 놓는이유(올빼미치,꼬리미) 법당에는 항상 초와 향을 켜놓고 있기 때문에 화재로부터 걱정이 많다.
올빼미는 저녁에 눈을 감고 잠을 자지않는데서 법당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치미로 유명한것으로 황룔사치미가 국립경주 박물 관에 있는데 무려182cm 나 된다.
치미의 크기로 봐서 황룡사가 얼마나 큰 전각 이였는지 짐작할수있다.
신라초기에는 제일높은 곳에 새가 배치되엇으나
후기에는 봉황이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물을 다스리는 용으로 바뀐다
그리고 용중에도 아홉의 아들중에 먼곳을 바라보기좋아하는 용 이 용이 위에 올라가 지킨다.(강우방)
비로자나불상
이불상이 원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극락전에 옮겨져 있던 것을 이곳 비로전에 원상복귀 안치하였고
비로전의 특징은 불상이 건물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신라시대 전형적인 불상배치라고 볼수있다. 현재 보이지않지만 목재 불단아래 석조 불단이 있어 건물 중앙에 위치함으로 본다.
비로전 문살
비로전 소맷돌
이소멧돌은 기단부와 계단이 2개의 돌로 되어있는데
이런 형식은 감은사지 소멧돌에도 볼수있으며
대웅전에 한개의 돌로된 소맷돌 보다 앞선시기의 형식이다.
그래서 대웅전보다 비로전이 더 빠른 시기에 지어진것으로 추정...
그리고 비로전 뒤의 기단아래에는 계단이 조성되지않았다.
그이유는 법신불이 계신곳으로
중생의 입장에서 볼때 열심히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을 경우 최종 종착지로 비로자나불이고
더이상 나아갈곳이 없다.
이곳에서 부터 불법을 아래 중생들에게 나아가는 시작되는곳이며 이곳까지오면 끝나는 곳이다.
그래서 없다
사리탑-보물61호- 이다.
부도의 주인은 알려지지않는다.
다만 1740년 활암스님이 쓴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부도의 이름이 광학부도라 되어 있다.
조각기법을 보면 구름모양과 안상으로 미루어보아
고려초기로 추정되며 전설과 실제사이에 갈등이 있다.
신라중기에 만들어져 신라말에 보수한것으로 추정하며
대웅전앞 석등의 안상과 닮아 있다.
정면에 석가모니부처님
보살상
보살상
우측에 다보부처님
나한전
부처님 제자를 모신 적각
나한은 아라한의 약자이다.중국의 영향을 받아 맨앞자를 생략하는 습관이 있는데 라한이 나한전으로...
나한을 모시는 전각을 나한전,오백나한전,응진전,응공전 모두같은 의미이다.
아라한은 인도말로 아는 부정어 접두사로 나한은 배우는 사람을 말하는데
따라서 아라한은 더 이상 배울게 없다는 말이다.
부처가되기 직전 수행이 완료된 부처님의 제자를 의미한다.
아라한에 최초로 도달한사람은 싯달타태자가 왕궁에서 나올때 아버지가 붙여주신 보디가드 다섯사람이 있었다 그분들이다.
극락전 후면
서편회랑/석축
범종각
오후 5시경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눈이 날리기시작 한다.
내가보는 올겨울의 첫눈이고 2012년 첫날 첫눈이다.
'▶불국사,석굴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재청 불국사 '대웅전·석축' '논산 노강서원강당'보물 지정 (0) | 2012.01.03 |
---|---|
[겨울]2012년 새해 첫날 불국사 (0) | 2012.01.03 |
[2011.12.04] 불국사 단풍 (0) | 2011.12.12 |
수학여행 불국사 (0) | 2011.12.11 |
[가을]불국사 돌아보기- [2011.11.20] (0) | 2011.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