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시·관람

[국립부여박물관] 보물194호 부여석조

박근닷컴 2012. 12. 27. 14:44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흔히 사찰에서 샘물과 연결하여 물을 담아두는 석조가 오 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 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곳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불교의 전파와 함께 사원을 구성 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단단한 화 강석을 파서 만든 큰 구조물로 그 재료의 견고성 등으 로 인해서 삼국시대 이후 만들어진 많은 석조들이 오 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보물 1523호로 지 정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 석조는 오늘 날까지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제 공하고 있다.

 

부여박물관 중앙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궁터로 추정 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지에 있던 보물 194호로 지정 된 백제 왕궁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가 있다. 이 석조는 사찰 입구에 놓여 있던 손을 씻고 샘물을 받아 먹던 기존의 석조와는 그 형태와 용도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工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 가 형태를 하고 있는 이 석조는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화분과 비슷한 기능 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찰과 마찬가지로 성역 화된 궁궐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던 유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여박물관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194호로 지정 된 부여 석조.

 

이 석조는 工자형 받침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석조가 올려져 있다. 일반적인 석조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 는 유물이다.

 

부여 석조, 보물 194호, 부여 관북리 추정 왕궁터 이 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 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工자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 리 형태의 석조가 올려져 있다.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는 백제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 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 끔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조의 표면에는 일정 한 간격으로 세로줄을 새기고 그 사이에 글을 새겨 넣 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보인다. 글은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으로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국보 9 호)의 1층 탑몸돌에 새긴 것과 같은 것이다. <출처:부 여박물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