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해외

1박2일 대마도 히타카쓰 한국전망대/미우다해변

박근닷컴 2013. 7. 30. 12:15

 

 

 

 

한국전망대

 

 

대마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 한국사람들이다.

 

쓰시마 내 가장 북쪽의 마을 카미쓰시마 쵸 와니우라 뒷산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 만든 팔각정 건축물로 계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한국산 재료를 구입. 전문가 초빙 등 철저히 한국식으로 1997년에 세워졌다.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는 서울 파고다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하였으며, 전망대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에 세워진 문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의 것을 모델로 하였다.

 

한국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는 132km의 거리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제도와 부산시의 윤곽을 육안으로 뚜렷이 볼 수 있어 그야말로 '국경의 섬' 임을 실감케 하며 밤이면 부산 광안대교의 불꽃이 환하게 비친다고 한다

 

한국 휴대폰(SK텔레콤)이 터지는 장소라 잘 도착 했다는 안부 전화를 걸 수 있는 장소라고 하지만 2008년 5월 현재 거의 터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쏘는 방해전파 탓이리라

 

예전에는 대마도 전역이 통화 가능권이었으나 2004년 우리 나라 방송에 소개된 직후 방해전파를 발생시켜 지금은 통화가능 지역이 거의 없다

 

 

 

 

 

전망대 내부에 한국의 야경사진이다.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

 

포구 앞쪽에 동서로 길쭉하게 보이는 섬은 '우니지마'로 우리 말로 해율도(海栗島)이다.

이곳에는 현재 일본 해상 자위대의 레이더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섬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와니우라'를 보호하고 있다

 

대마도에는 우니시마의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와 오오우라(大浦)에 해상자위대가 있으며

이즈하라(嚴源)에는 육상자위대가 있어 군사적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경의 섬이다.

 

 

 

 

 

 

 

 

 

5월이면 이팝나무 군락을 이루는곳이라한다.

 

 

 

 

 

 

 

 

 

한국전망대 바로 옆에 조선역관사 순국비(朝鮮譯官使 殉國碑)가 서있다

 

조선 제19대 숙종 29년(1703년) 2월 5일(음력) 청명한 아침에 부산을 떠난 한천석(韓天錫)이하 108명의 조선역관 일행과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측 역관 4명이 저녁 무렵 대마도의 와니우라(鰐浦)입항 직전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애석하게도 죽음을 당하였다.

 

당시 한양을 비롯한 각지에서 선임된 이 사절은 정.부양사(正. 副兩使)와 상관(上官) 28명, 중관(中官) 54명, 하관(下官 )24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대마도의 제3대 번주 종의진(宗義眞)의 죽음을 애도하고 신번주인 제5대 종의방(宗義方)의 습봉을 축하하기 위하여 파견된 국제외교사절단이었다.

 

日本이 에도시대의 쇄국제체 하에서도 유일하게 정식으로 국교를 유지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과의 신뢰를 지켜 온 선린외교였다.

 

이러한 외교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조선에서 에도까지 왕복했던 통신사와는 달리 대마도의 부중이었던 이즈하라(嚴原)까지 왕복했던 백 명정도의 국가 사절이 역관(譯官)이었다.

에도막부가 조선과의 외교에 있어서 일본측의 권한을 대마번에게 일임하고 있었던 것만 보아도 진정한 선린외교의 주축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이 역관이라고 하겠다.

에도시대 조선과의 사료를 보면 역관들이 대마도를 방문한 것이 무려 51회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험한 풍랑속에 묻힌 이 역관들의 배에는 4명의 대마번사도 타고 비운을 함께 하였다 한다.

 

이 비는 이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위령비이다.

 

당시는 수장된 사람들의 명단을 알지 못했는데, 대마도주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종가문집(宗家文庫)를 정리하던 중 사망자들의 명단이 발견되어 순국400주년을 맞이하는 2003년 3월7일에 순국자들의 이름을 적어 추가로 건립했다.

기단석은 112개의 돌로 쌓아 당시 희생된 112명을 추모하는 뜻이 담겨져 있으며 일본어와 한국어로  유래와  당시 사망한 112명 역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책.대마도에서만난우리역사 문사철지음 에는)한천석일행의 죽음에 대해 풍랑을 만나 죽은것이 아니라

일본관원들과 화물검사를 두고 시비를 벌이다 싸우게되 일본인에 의해 죽었다는 설도 있다.라고 나온다-

 

 

 

 

 

 

 

역관사들이 바다를 항해하여 대마도로 오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이팝나무는 일본 본토에는 없고 대마도에만 있으며 와니우라 지역에 약 3,000그루 자생하고 있다. 

이 이팝나무 두 그루를 왕실에 보내 왕궁에 심었더니 천왕이 꽃을 보고 찬탄하여 시(詩)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서야 우리나라에서 들어온 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밥나무라는 말이 변하여 이팝나무로 불리운다

(이밥-경상도 사투리로 쌀밥을 이밥이라 부른다. 보리고개 배고프던 시절, 이씨조선 왕족들이 먹던 밥이라는 뜻의 은어로 이밥이라 불렀다)

해마다 이팝나무의 꽃이 피는 5월 초순에 와니우라에서는 이팝나무 축제가 열린다

 

 

 

 

 

 

택시

 

 

 

 

미우다해변

1996년도 일본해안100선에 뽑힌곳이라고한다.

 

 

 

 

 

 

 

 

 

대마도의 최북쪽 해안에 있는 해수욕장이다.히타카쓰항에서 버스로 약 10-15분 거리에 있다

에메랄드 물빛과 앞이 탁 트인 바다. 작지만 아담한 백사장, 입자 고운 천연 모래 해변이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일본의 100선 해수욕장에 선정된바 있다고 한다.

가까이에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 하나있고 소나무 한그루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다.

여름이면 <텐트>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고, 캠핑시설도 비교적 잘되어 있으며. 대마도에서는 드물게 넓은 주차장이 있다.

 

 

대마도는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운섬이다.  일본인 주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섬이다.

한국과 일본이 아픈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진정한 동반자 정신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길 바라면서 마침!

.

.

.

이웃나라를 알고자 여행가이드 이야기와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를 하였다.

대마도 1박2일 일정의 이야기속에 역사 이야기는 인터넷블러그 솔뫼님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2012.07.05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