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하라에서 점심을 먹고 히타카쯔 항으로 갈것이다....티아라몰과 면세점을 들렀다가 점심식사장소로 이동
티아라 몰
점심 식당입구
점심 벤또
쓰시마햄버그와 점심 슈퍼에서 구입한 켄커피
다리옆에 지장보살
동네 옷가게
동네에 뭐가 있는지 한눈에 보여는 블럭 지도가 있다
티아라쇼핑몰
만관교(萬關橋-만세끼바시)
대마도(쓰시마섬)는 처음에는 하나의 섬으로 연결된 것이었으나 인공으로 운하를 뚫은것으로.
아소만과 미우라만 사이에 개척된 만제키세토(세토-물길)라 불리는 운하에 놓여있는 다리이다.
만제키세토(세토-물길)는 쓰시마섬을 위 아래로 나누는 경계로 북부를 가미시마[上島], 남부를 시모시마[下島]라 부른다.
다리 위에서 조류의 소용돌이를 구경할 수 있다.
1897년에 굴삭을 시작하여 1900년에 완공시킨 일본 군사용 운하이다.
3번에 걸쳐 만들었는데 1900년에는 운하의 길이:300m, 폭22m, 수심3m였으나 1996년 준설 후는 운하의 길이:300m
폭:65m. 수심5.5m이며 다리의 폭:3.6m. 다리길이:100m. 높이:36m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길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만세끼 운하다.
일본은 이 운하 반대편에 수뢰 특공단과 어뢰정를 숨겨두고 러시아 발틱함대(총38척)가 지나갈때 신속하게 이 운하를 통해 후면과 측면을 공격하고 북쪽에 대기 하고있던 본대가 나타나 정면을 공격 함으로써 마침내 세계 최강 발틱 함대는 쓰시마에서 괴멸되고 마는데 이 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고 그 해(1905년) 가쓰라-테프트협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대한제국 지배의 승인을 받아낸후 한국의 주권을 박탈한다.그후 5년 뒤 1910년 대한제국은 강제합병(한일합병)을 당하게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승의 다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통한>의 다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하와 다리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이날<5월27일>을 해군전승기념일 즉 <해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현재 아치형 교량은 세번째 만들어진 다리이다
지금의 대마도는 두개의 섬으로 이어져 있다.
후나코시 부근에 대마도를 관통하는 물길이 있어 대마도 를 위아래로 나눠놓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않았다. 비록좁은 언덕길이지만 위아래의 섬이 이어져 있었다.
20세기에 들어 일본군이 그곳에 운하를 뚫었다.
일본군은 만세키세토를 뚫고 이 운하를 통해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했던것이다.
만세키 밑을 흐르는 바닷물과 주변 마을(쓰시마해협쪽으로 난 협곡)
운하를 흐르는 바닷물 (대한해협쪽으로 난 협곡-아소만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대마도에는 대선월운하와 만세키운하 2곳의 운하가 있다.
배가 아프면 제일 먼저 찾는 약 정로환(征露丸-正露丸).
아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정로환이 바로 러일전쟁의 산물이다.
러일전쟁시 만주 일대로 간 병사들은 수질 오염이나 오염된 물을 마신 까닭에 배탈 설사로 사망자가 많았다. 이에 일왕의 칙령으로 다이코신약이 만들게 된 게 설사약 정로환이다.
이 때 정이란 정복할(칠) '정'-친히 황제가 나아가서 치는 전쟁이란 征과 러시아의 '露'를 합쳐 정로환(征露丸)이라고 일왕이 직접 이름지은 약이다.
1972년 우리나라가 이 약을 수입해서 이름을 칠 征에서 바를 正(征露丸 - 正露丸)으로 고친 뒤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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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를 알고자 여행가이드 이야기와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를 하였다.
대마도 1박2일 일정의 이야기속에 역사 이야기는 인터넷블러그 솔뫼님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2012.07.0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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