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에서 사랑채로 나가는문...
사랑채(별채)
독락당은 문원공 회재 이언적이 1515년에 경주 주학교관에 부임하여 지은집으로
그의 아들 잠계공 전인이 물려받아 지금껏 대를이어 보존하고 있다.
건립초기에는 현재의 인지헌과 양진암자리에 학업을 위해 'ㅡ' 형 평면의 초려삼간을
지은것으로 추정
회재선생이 정계에서 물러난뒤 은둔을 하는 계기에(1516년) 양주 석씨 사이에
잠계공 이전인이 태어나고 안채와 독락당을 신축하고
예전의 'ㅡ'자형 안채를 양진암 인지헌으로 중수한 후 계정을 중수한다.
회재선생 돌아가신후 (1553년이후) 아들 잠계공에 의해 어서각과 사당을 신축하고
1555년에 독락당을 온돌구조로 개조하였다.
이후 회재선생의 장손 구암공 이준에 의해 안채는'ㅁ'자로 중수(1772~1623)하고
안채앞에 숨방채(행랑채)를 지어 현재와 같은 '므'자형의 배치가 완성되었다.
이후 이준의 아들 이굉에 의해 '공수간''솟을대문'(외삼문)'마우간'이 신축(1623년이후)되어
행랑채 영역이 완성되어 지금에 이르고있다.
사랑채 영역인 독락당은 초기에 건립되어 몇번의 중수를 겪었지만
건립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있다. 그러나 안채 영역은
'ㅡ' 자 ㅡ'ㄷ' 자 ㅡ'ㅁ'자 ㅡ'므'자 형태로 변화를했다.
독락당- 아계 '이산해' 글
(아계 이산해는1539-1609 선조때 영의정으로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다)
옥산정사- 퇴계 '이황' 글
- 이 사진은 독락당 겨울사진-
바깥 행랑채에서 들어오는 대문이 보인다.
(현재는 허락하에 문이 열린다.평소는 사용하지않는다)
독락당/옥산서원 지킴이
문화유산해설사- 정기열 선생님
폭염속에 열정적인 해설을 해주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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