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당(獨樂堂, 홀로독 즐길락 집당, (보물 413호, 옥산정사)은
이언적 선생이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파직(1531)당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집으로,
1532년부터 약 6년간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옥산서원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언적 선생의 둘째 부인의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다.
독락당은 이언적 선생이 파직당한뒤 지은 집이라,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시기에 지었던 향단에 비해 훨씬 소박하다. 그러나 화려하고 폐쇄적인 향단도, 보란듯이(?) 낮은 마루와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독락당도, 모두 다른 이들을 의식한 가옥이란 생각든다.
사진은 계정(溪亭, 시내계 정자정)으로, 독락당에 속한 정자다. 이언적 선생이 스님들과 교우하며
홀로(?) 자연을 즐겼던 곳이었다한다. 자계천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내려가면 이언적 선생을 모신
옥산서원이 나온다.
계정(溪亭)
숲속에 우는 새는 듣기에도 즐겁구나
시냇가 경치따라 집 한 채 이룩했네
밝은달 벗삼아 술잔을 기울이니
흰구름아 한 데 놀자 흩어지지 말아다오.
- 계정 위쪽 -
- 계정 아래쪽 -
조선 유학자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기거하던 곳.
훈구세력을 견제.,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
사간원 사간으로 재직시 김안로의 재등용에 반대하다가
그들 세력에 밀려 관직에서 쫓겨나 낙향., 은거한 독락당.
독락당은 크게 사랑채 영역과 안채 영역으로 구분
사랑채 영역에는 사당, 별채인 계정 등이 포함된다.
사랑채는 계곡과 숲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면해 있다.
바깥에서 집 안 가장 깊은 곳까지 여러 담과 문
독락당이 막 시작되는 곳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다.
개울 너머 대문과 길은 아주 희한한 관계로 놓여 있다.
길이 대문과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비스듬하게 빠져 있다.
대문 안에는 담으로 구획된, 마당 옆으로 행랑채
행랑채 마당에 두 갈래 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상과의 관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장소는 중문
이곳에는 또 다른 담이 있고 거기에 문이 놓여 있다.
거기에다 계정으로 가는 문이 살짝 옆으로 숨어 있다.
계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독락당 건물을 거쳐야만 한다.
계정은 아주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절반은 집안에 있고 절반은 숲속에 있다.
집과 자연 양쪽 세계에 걸터앉아 있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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