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시·관람

특별전관람- 조선인의 삶과 죽음 이야기, 묘지명 (국립중앙박물관)

박근닷컴 2011. 3. 16. 03:53

 

 

 

 

 

 

 

 

 

 

 

 

 

 

묘지(墓誌)와 묘지명(墓誌銘)을 딱히 구분하라면 '묘지(墓誌)에는 주로 묻힌 이의 이름, 태어난 날과 죽은 날, 가족관계 등의 내용이 담기고, 묘지명(墓誌銘)은 묻힌 이에 대한 칭송, 찬양, 추념, 추도의 내용이 추가' 되는 경우다. 한마디로 묘지는 제목인 셈이고, 묘지명은 문장이 담기는 내용인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묘지(묘지명)는 관과 함께 땅에 묻힌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묘지명을 보면 '한 인물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서 이루어진 생활, 문화, 역사 등을 총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의 기록'이라고 전시의 취지에 밝혀 놓고 있다.

 

 

 

 

 

 

 

 

 

 

 

 

묘지는 대개 아들이 짓게 되어 있지만, 다른 가족이나 친인척, 혹은 지인 등에게 지어달라고 청하기도 한단다. 묘지명은 묘지를 짓고, 도자기 판에 새기고, 가마에 굽고, 탁본을 떠 기록을 남긴 후에 관과 함께 땅에 묻히는데, 이 모든 과정은 장례기간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중에 합장을 하거나 이장을 할 때 새롭게 만들어 넣기도 한단다.

 

묘지를 짓는 것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일이나 생전에 본인이 미리 지어 놓은 묘지명도 있다. 묘지명은 유명한 사람 것만 있지 않다. 일찍 죽은 남편을 위해 아내가 한글로 쓴 한 장의 편지 글도 있고, 벽돌 한 장에 짧은 시로 안타까움을 새겨 넣은 것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남은 자로서의 예의를 갖추어 짧은 글이나마 추모의 정을 남긴 것이다.

고려시대의 묘지명은 돌에 새긴 것이 많았고, 조선으로 넘어오면서는 주로 도자기에 글을 새겨 구워서 만들었다. 조선시대 후기로 가면서는 도자기 묘지명을 제작하는 계층이 다양해져서 왕실이나 사대부에만 그치지 않고 하급관리, 중인에까지 확산되었다 한다. 

 

 

 

 

 

묘지명이 부장된 모습

 

 

 

 

 

 

 

 

김경한 묘지. 큰 단지에는 묘지 제목을, 작은 단지에 묘지명을 적었다

 

조선 후기의 무신 신승 묘지명과 함.

 

 

김광수 자명 묘지와 묘지명을 탁본해 모아 엮은 첩.

스스로 생전에 지었다 한다.

 

 

 

 

 

 

 

 

 

 

 

 

 

 

 

영조가 친이쓴 사도세자 묘지명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영창대군의 묘지명

 

 

 

사람의 생졸 년대와 가족관계가 쓰여 지는 '묘지'는 모든 죽은 이들이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추모의 정을 담뿍 담아 적은 '묘지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묘지명에는 비록 주관적인 편린들이 새겨질 지라도 그 안에는 당사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들어 있어 생전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장례문화에 깊숙이 관여하는 일은 드물게다. 그러다보니 이런 장례의례들이 있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또 시대에 따라 장례문화가 변천되어 왔을 터,  이번 전시를 통해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묘비명)과 무덤 안에 넣는 묘지와 묘지명의 차이를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