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전시·관람

서울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전 관람

박근닷컴 2011. 3. 17. 23:30

 

 

 KTX 타고 서울로....

실크로드로의 여행을 위해서...

 

 

서울에서 경주를보다..

 

 

서울역 광장에....

 

 

 

지하철 4호선타고 이촌역에 하차.....국립중앙박물관

 

 

드디어 실크로드와둔황 전

'왕오천축국전'을 만나러 왔다.

 

실크로드 여행의 시작이다....

 

 

 

 

 

혜초스님의 멀고 긴 여행길에도 그 벗이 되어 주었을듯한 사막의 낙타 

 

 

 

 

 

 

 

 

1900년에야 서양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페리오등의 학자들에게

둔황 천불동 17호굴에서 만여점의 고문서가 빛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이 수많은 문서들을 자기 나라로 가져갔고

펠리오가  가져간 문서중에서 다섯 천축국을 여행한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3대 여행기록서의 하나인것이다.

 

 

 

뱃길로 중국 광저우~ 인도로~ 육로로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지나

 당나라 수도 장안(지금의 시안) 까지 4년간 2만 km의 여행기

727년에 쓴 초고본은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현재 남아 있는것은 총 227행에 5,893자 총길이 358m 인데

그나마도 훼손 우려로 대여 조건을 60cm만 펼쳐 보이기로 하였는데

그나마 3월17일이면 프랑스로 이 여행기록문서는 돌아가야 한다.

 

혜초스님은 두루마리 필사본을 기초로 3권의 기행문을 남겼다고 중국 문서에 나타나는데

현재까지 그 3권의 기행문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둔황에서 여행 초고본인 왕오천축국전이 발견 되었으나

혜초는 둔황을 떠나 장안에서 수도승으로서 여생을 마감 하였다하니 

언제인가는 그 완간본 3권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질수 있으려나......

아쉬움과 함께 하는 기대감이 ....

 

 왕오천축국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란 ?

-통일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고대 인도 다섯 곳을 답사한 뒤

성덕왕 26년인 727년에 쓴 기행문

 ‘천축’이란 8세기 당시 중국 사람들이 고대 인도를 부르던 말로 왕오천축국전이란

인도의 다섯 나라를 답사했다는 의미이다. (동천축국,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

 

 

전시실에 복원품이다.

 

 

 

 

 

 

 

 

 

중앙박물관 해설사님

 

 

 

 

 

 

 

사진은 제데로 못찍었다.

여기저기 감시원이 깔려서....

입장료도 비싸게 받으면서 ...일부라도 '모사품들' 사진좀 허락해주지....야박하기는

 

 

 

파미르 고원과 천산북로

투르치키스탄인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살아가는 그 후예들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먼 옛날....

 

 

 

 

 

 

 

돌아 오는길....

 

서울역 식당가 2층 

 

김치라면- 맛있었다.

 

귀가...

 

서울야경을 뒤로.....

 

 

[아래 내용은 국가지식포털 테마체험관에서 스크랩]

한국인이 작성한 최초의 해외 여행기이자 세계 최고의 여행기 중 하나로 꼽히는 ‘왕오천축국전’이 1,28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습니다. 12월 18일부터 내년 4월 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준비한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왕오천축국전은 727년에 통일신라시대 고승인 혜초에 의해 기록된 이후 처음 고국을 찾는 것이며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국사책에서 숱하게 들어왔던 왕오천축국전,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맞이하며 왕오천축국전의 탄생 배경과 내용, 현재 프랑스에 가 있게 된 경위, 그리고 전시회 내용을 지식자원관리사업으로 구축된 장서각 소장 국학자료(http://yoksa.aks.ac.kr)의 도움을 받아 알아보겠습니다.

 


>> 왕오천축국전 개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통일신라시대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고대 인도 다섯 곳을 답사한 뒤 성덕왕 26년인 727년에 쓴 기행문입니다. ‘천축’이란 8세기 당시 중국 사람들이 고대 인도를 부르던 말로 왕오천축국전이란 인도의 다섯 나라를 답사했다는 의미입니다.

 

 

 왕오천축국전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바로가기


혜초의 천축기행을 보면 처음 동천축국을 여행할 때만 해도 주된 관심은 불교였습니다. 그러나 중천축, 남천축, 서천축, 북천축으로 옮겨가면서 혜초의 관심은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 언어와 기후, 지리 등 자연환경으로 확대됩니다. 때문에 왕오천축국전에는 불교와 관련한 내용 외에도 서역 사람들의 삶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전해지는 불교유적 순례기가 육지로 갔다가 바다를 통해 오거나 육지 또는 바다 한 길을 통해 순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왕오천축국전은 바다로 갔다가 육지를 통해 돌아온 기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왕오천축국전이 처음부터 일반인에게 알려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후 프랑스 동양학자이자 고고학자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중국 둔황의 막고굴 17굴 석실에서 이를 찾아내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펠리오는 당시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고 프랑스로 이를 가져갔고 이후 현재까지 프랑스에 소장되게 된 것입니다. 최초의 불교유적 순례기로도 불리지만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필사본 1권 1책이 보관돼 있습니다.     

 

처음 발견 당시 왕오천축국전은 두루마리 형태로 앞부분과 뒷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제명도 저자명도 없었습니다. 겨우 한 행에 30자 내외로 모두 227행의 한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총 227행에 5893자로 세로 28.5㎝, 가로 42㎝ 크기의 종이 아홉 장을 붙여 만든 것으로 총 길이는 358㎝입니다.

 


>> 혜초(慧超 704~787)를 말하다
혜초는 704년에 신라 수도인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5살 되던 해인 719년에 밀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서 밀교를 배웠습니다. 금강지는 남인도 출신으로 제자인 불공(不空)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 밀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초조(初祖)가 돼 밀교를 전하던 사람입니다. 밀교는 비밀불교란 뜻으로 7세기에 대승불교의 화엄사상, 중관파, 유가행파 사상 등을 중심으로 해서 인도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종교입니다. 

 

 

밀교를 배우던 혜초는 4년 뒤인 723년 19살의 나이에 인도로 구법 기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구법 기행이란 험난한 길을 직접 걸으면서 기록하는 것으로 혜초는 구법 기행 결심 후 곧 중국 광저우를 떠나 뱃길로 인도에 도착해 불교의 8대 성지를 순례합니다. 서쪽으로 간다라를 거쳐 페르시아, 아랍,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추치와 둔황을 거쳐 727년 당나라 수도인 장안으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4년이 걸렸고, 이동경로만도 약 2만㎞에 달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이때 돌아와 쓴 기행문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입니다.

 

 혜초는 누구인가 (동영상)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바로가기


733년에는 당나라 장안 천복사의 도량에서 금강지와 함께 밀교 경전을 연구합니다. 740년엔 이 경전의 한역에 착수했으나 이듬해 금강지의 죽음으로 중단했습니다. 혜초는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불공삼장(不空三藏) 6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쳤으며 중국 밀교의 법맥은 금강지-불공-혜초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혜초는 중국 장안에 한동안 머물다가 780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오대산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노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787년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혜초의 천축국 기행 따라잡기
천축국 기행동안 혜초는 불교가 가장 성행했던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마다가국(현재의 비하르)을 비롯해 석가모니가 입적한 곳인 쿠시나가라(현재의 카시아), 석가모니가 처음 설법한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를 거쳐 라자그리하에 들어가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에서 참배하는 등 불교 유적지를 순례했습니다.

 

 

 혜초의 이동 경로
    출처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바로가기


중천축국의 수도 카나우지에 머물면서는 코끼리 900여 마리를 거느린 왕과 200~300마리의 코끼리를 가진 대수령들에 대한 얘기와 인도 전역의 기후, 풍습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의 음식은 멥쌀로 빚은 떡과 미숫가루, 우유 등이 있고 장(醬)은 없고 소금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 가축을 기르지는 않지만 소만은 즐겨 기른다고 했습니다.

 

 

다섯 천축국의 의복과 언어, 풍속, 법 등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우선 법을 보면 죄수의 목에 칼을 씌우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형벌이나 감옥에 가두는 것은 없으며 죄인에게는 그 죄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은 없었다고 썼습니다. 사냥하는 것은 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보지 못했으며 길에는 도적이 많기는 하나 물건만 빼앗고 즉시 풀어줬으며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바로 주지 않으면 해를 끼치기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후 혜초는 현재의 데칸 고원인 남천축국에 들러 과거 용수보살의 신력으로 세웠다는 큰 사원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서천축국을 거쳐 북천축국,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 일대와 간다라 문화 중심지 등을 차례로 들렀습니다. 이어 현재의 카슈미르 지방에 들른 후 거꾸로 간다라 지방을 거슬러 내려오면서 스와트, 길기트, 페샤와르, 오장국, 구위국 등을 답사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서부 투르키스탄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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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국가지식포털 테마체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