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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구례 화엄사 3

박근닷컴 2011. 5. 11. 12:57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최대 사찰은 누가 뭐래도 구례 화엄사다. '구례군화엄사기실(求禮郡華嚴寺記實)'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烟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는 범승(梵僧), 즉 인도 스님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화엄사 창건 100여 년 후인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크게 증축한 이후 몇 번의 증ㆍ개축을 거쳐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의 큰 사찰을 이루었지만,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에 타 버렸다. 임진왜란의 화마를 당했지만 화엄사는 국보 4점, 보물 5점 등 남도 사찰 중 가장 많은 유물을 간직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각황전

 

 

국보 제67호인 앞면 7칸 옆면 5칸의 2층집 각황전(覺皇殿)은 일단 크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원래는 각황전 터에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장육전(丈六殿) 역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조선 숙종 때 계파성능(桂波性能)이 다시 지었는데

 숙종이 '대왕을 깨우치게 한 보전' 이라는 뜻의 '각황전' 이라는 현판을 하사하면서

이름이 각황전으로 바뀌게 되었다.


 

각황전 중층 지붕

 

 

 

 

 

 

각황전앞 석등

 

6.4미터 크기의 국보 제12호인 각황전 앞 석등은 우리나라 최대 크기다.

보통 석등이 3미터 내외임을 고려해보면 그 크기와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9세기 중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등은 뒤 건물인

각황전의 위용과 환상적인 커플을 이룬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 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 지붕돌 등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원통전앞 4사자 감로탑 ㅡ 보물제300호

 

 

 

 

 

 

 

 

 

 

 

 

각황전 내

 

각황전 후면

 

 

 

 

 

 

 

 

 

각황전 내부전면 천정

 

 

 

 

 

 

 

 

 

 

 

각황전 뒤

 

 

 

화엄사 일원이 사적및 명승 제10호로 지정될
정도로 많은 석조물과 목조 건축물이 남아있어
한번에 이를 담아내기는 매우 어려울듯 하다

 

이외에도 중요유물 화엄석경등이 있다.

화엄석경 보물제 1040호
  
석경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것으로
   이웃 순천 땅에서 생산되는 편마암의 청색
   납석
(기름과 같은 광택이 있고,만지면 양초같이
   매끈한 암석)
에 화엄경 경문을 새긴 것으로
   임진왜란때 화재로 석경이 파손되고 색깔도
   회갈색으로 변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