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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구례 화엄사 1

박근닷컴 2011. 5. 11. 12:59

 

화엄사 가는길....

 

남악사

 

천왕봉과 더불어 노고단은 우리민족의 영원한 믿음의 성지로 전해져 오고 있다.

동서로 1백리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솟아 있으면서 지리산이란 큰 궤를 같이하며

우리 민중의 추앙을 받아온 민족신앙의 영지로 남아있는 이들 두 봉우리. 노고단은

높이면에서는 해발 1,507m로 천왕봉의 그것과 비교해 다소 큰 차이를 보이지만

역사 이래로 우리 민중에게 부여해온 의미는 천왕봉에 비해 결코 뒤짐이 없다.

 

일명 고선봉으로 불리는 노고단은 서남방향으로 17∼18도의 완만한 경사지대로 대략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다.

이 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사는 선도성모의 사당인 남악사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노고단에 화엄사 앞으로 옮겨져와 구례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약수제와 함께 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악사의 유래는 "삼국사기" 제사 부분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삼산과 오악 이하의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의 제사를 나누어 지냈는데

중사를 지내는 오악은 동쪽 토함산, 남쪽 지리산, 서쪽 계룡산, 북쪽 태백산, 중앙부악(부악·지금의 팔공산)이었다' 고

적혀 있어 지리산에서 남악으로 정해져 제사를 올리던 명산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제사를 올리던 곳은 노고단이며, 남악사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처럼 국가차원에서 제사를 올린 의미는 무엇인가.

사학자들은 당시 이같은 국가의식을 민중들이 받들던 성모신앙과는 그 의미가 다른것으로 풀이하고

노고단에 남악사를 세워 국가차원에서 의식을 진행한 것은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별도 성모사당인 성모사를 위압하려는 측면도 게재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라 시조의 어머니를 모시는 남악사를 세워 민중차원의 성모신앙(무속신앙의 큰 흐름) 을

국가차원에서 흡수하려 했던것으로 보아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제례는 신라이후 고려 조선을 거쳐 변함없이 면면히 이어져 왔으나

한말 융희2년 (1908)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악사는 지난 69년 12월 전남도와 구례군에 의해 화엄사 앞에 복원됐다.

 

 

 

 

화엄사 일주문

 

 

선조의 여덟째 왕자 의창군 광(珖)이 1636년 썼다고 한다.

 

 

 화엄사가람은 4개의 공간으로 영역화 되어 있다.

첫번째는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까지 이어지는 직선형 진입공간이다.

 

일주문은 화엄사 전체 규모로 볼 때 소박한 편이며,

금강문과의 사이에 화엄사 중창주 벽암스님의 부도비가 서 있다.

 

일주문 안에서....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都大禪師碑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중창하신 벽암스님(1575~1660)의 비이다.

법명은 각성覺性, 호는 벽암碧巖, 속성은 김씨, 충북 보은 출신이다.

10세때 화산華山의 설묵雪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여 14세에 스님이 되었다.

953년 19세때 승병에 가담해 자운慈雲스님을 따라 해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광해군때 봉은사에 머물면서

 판선교도청섭判禪敎都摠攝이 되었고, 부휴浮休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

 

   인조때 남한산성축성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되어 승군을 거느리고 축성작업을 감독,

3년만에 축성사업을 마쳤으며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의 칭호를 받았다.

 스님은 8원 81암자의 화엄사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인조(1630~1636)때 대웅전, 보제루, 적묵당, 천왕문, 일주문 등을 중창하였다.

병자호란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한 소식을 듣고 남도 의승 3천명으로 항마군을 조직하여 호남의 관군과 호응하여 북으로 올라가던 중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도반인 고한孤閑스님과 더불어 화엄사로 돌아와 주석하면서

그후 사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가던 중도에 병으로 사퇴하고 화엄사에 와서 후학을 가르치던 중 이곳에서 입적하니 세수 86세, 법랍 72세였다.

법 제자로는 백곡처능白谷處能이 있으며, 화엄사와 송광사, 법주사에 부도탑을 세웠다. 

 

 

                                                      자료출처 : 답사여행의 길잡이 6  '지리산 자락'  [돌베개 1996]

 

화엄사 금강문앞 화엄사 중창주 벽암스님 부도비

 

 

  

 

 

귀부 목덜미부분

 

 

 

뒷발

 

 

 

 

 

꼬리부분

 

 비좌문양

 

앞면

 

 

뒷면

 

 

 

 

 비의 이수에 용의코가 왠지 돼지코같다...ㅎ

 

 

 

 

 

 

금강문

 

 

밀적금강 (문에서 왼쪽에 배치됨 )/보현동자

 

밀적금강(密迹金剛)ㅡ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아차신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이 있으므로
밀적금강 이라한다.

문수동자상/나라연금강(오른쪽 배치됨) 


나라연은 천상의 역사로서 그힘은 코끼리 
백만배나 된다.나라연과 같은 힘으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천왕문

 

 

 

 

 

천왕문 안쪽에서....

 

 

 

당간지주

 

 

 

보제루

 

보제루는 승려와 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아한 맞배지붕집이다.

건물을 돌아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집이다.

보제루 앞의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되고 당시에는 이곳에서부터 산문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종각

 

 

 

보제루를 지나면 화엄사 대웅전이 보인다..